[푸디토리움의 명반시대] (14) 힐두르 구드나도티르 ‘Chernoby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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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는 이제 사전 기획과 마케팅을 통한 제반적 산업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음악 역시 한 작곡가의 작품이라기보다 기획과 상업적 결과물을 얻기 위한 협업·분업이 일반화되어 있지요. 또 ‘영화 음악’하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녹음현장이 연상되지만 이제 영화나 드라마 음악가들은 더는 지휘봉을 잡는 사람만은 아닙니다. 어떤 음악가는 전자기타 연주자이기도 하고, 어떤 음악가는 오직 컴퓨터로만 음악을 만들기도 합니다.

영화 음악가가 어떤 음악적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는 사실 상당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에 따라 음악이 전혀 다른 성격을 갖게 되거든요. 예를 들면 영화 음악가 한스 치머는 1970년대 밴드 ‘크라카토’의 멤버로 신시사이저 연주자였습니다. 그의 화려한 오케스트라의 근원에는 신스와 전자음악이 기본적인 콘셉트로 자리 잡고 있지요. 최근 화제의 드라마 ‘체르노빌’의 사운드트랙은 음악가의 백그라운드와 영화·드라마 산업 흐름의 변화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보았을 때 정말 무척 놀랍습니다.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시간대별로 재구성한 이 드라마는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부터 긴장감으로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세계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을 담아낸 드라마의 엄청난 긴장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멈춤 버튼을 누르는 것뿐일 정도입니다.

드라마가 보는 이를 사로잡는 직접적 요인은 항상 불안하게, 그러나 절대 과하지 않은 핸드헬드 촬영 기법일 텐데요. 동시에 그 시대 구소련의 모습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도 한몫을 하더군요.

이 드라마에서 압도적 긴장감을 만들어 내는 일등 공신은 바로 음악입니다. 이 음악은 올해 그래미에서 ‘사운드트랙 상’을 받았습니다. ‘체르노빌’의 음악가는 힐두르 구드나도티르인데요. 그녀는 아이슬란드의 음악가이자 첼리스트입니다. 최근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조커’의 음악도 역시 그녀가 작곡하고 연주한 작품입니다.

힐두르 구드나도티르는 첼리스트답게 첼로의 무거운 저음 소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지금껏 접하지 못했던 사운드와 선율을 만듭니다. 어떤 단순한 선율로 기억되던 영화나 드라마의 음악은 이제 선율이 아닌 ‘색과 무게감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상상력’으로 다가오도록 음악의 의미를 완전히 바꾸어 버립니다. 그 거대한 힘은 영화 전체를 흔들어 쥘 만큼 대단합니다. 영화와 드라마의 산업이 완전히 바뀐 이 시대에, 음악가의 백그라운드가 음악의 결과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분야에, 오직 한 작곡가가 첼로 연주자라는 흔하지 않은 자신의 백그라운드와 악기로 이렇게까지 개성이 강한 음악을 탄생시킨 이 사운드트랙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정범 성신여대 현대실용음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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