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총선 심판론’을 심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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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부산 기장군의 유권자다. 때가 때이니만큼 기장과 관련한 총선 뉴스에 눈길이 먼저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부산일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지난주 의뢰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동만 미래통합당 후보가 45.1%로 최택용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33.8%보다 오차범위 밖인 11.3%포인트(P) 앞서 나가는 가운데 무소속 김한선 후보는 4.4% 지지에 그쳤다. 물론 여론조사에서 밀린 후보는 “선거는 개표 결과가 말한다”며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기는 한다.

기장에까지 불어닥친 총선 심판론
‘선거 기술자’의 프레임 혹은 구도
지역 선거판 좌지우지는 민심 유린

지금은 ‘유권자의 기술’ 생각할 때
지역과 나라의 미래가 달린 문제
정치 개혁, 결국 유권자 손에 달려

‘선거는 뚜껑을 열어 봐야 안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기장에서 만난 밑바닥 민심은 <부산일보> 여론조사 결과와 대체로 맞물려 돌아가는 인상이다. 기장군은 부산의 16개 구·군 가운데 유일한 군청 관할의 도농복합지역으로 꼽히는 까닭에 지역 연고가 선거판을 좌지우지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품기 쉽지만 윤상직, 하태경, 안경률 의원 등 역대 국회의원의 면면을 보면 지역 연고가 없는 ‘뜨내기 의원’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토박이 의원’을 뽑자는 민심이 두드러지고 있다.

“기장에 코빼기도 안 보인다” “기장 떠날 때 간다는 말도 인사도 없다” 따위의 그동안 지역 국회의원에 대해 누적된 불만이 이번에는 최고조에 달한 느낌이다. 해운대에서 떨어져 나와 기장 단독선거구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단 윤상직 현 의원이 임기를 다섯 달이나 앞두고 지역구 사무실 문을 닫은 게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그런데 이들 뜨내기 의원에 대한 반감이 같은 당 소속으로 토박이인 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가운데 대한민국 동남단의 ‘변방과 경계의 땅’ 기장에도 야당심판론과 정권심판론이 먹혀들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철새처럼 나타나는 선거 기술자가 짜놓은 이번 21대 총선의 프레임이자 구도가 정권심판론과 야당심판론이다. 어두운 시절 소기의 성과를 얻고자 물불을 가리지 않던 고문 기술자를 연상시키는 선거 기술자는 오로지 승리라는 목표만을 향해 선거전을 단순 명료하게 정리함으로써 전선을 뚜렷하게 한다. ‘이쪽이냐 저쪽이냐’ ‘좌냐 우냐’ ‘진보냐 보수냐’로 편을 가르는 진영논리의 확산을 통해 피아 구분을 분명하게 한다. 선거전에서는 전술과 전략이라는 싸움의 기술만 돋을새김 된다.

선거 기술자는 총선 기술자이자 대선 기술자다. 총선 승리라는 능선을 넘어서면 대선 승리라는 고지가 보인다. 대한민국 권력을 장악하겠다는 목표 아래 기술(?)을 건다. 그래서 정권을 심판하거나 야당을 심판해야 한다. 물불 가리지 않는 꼼수와 편법은 사상 초유의 비례용 위성정당 창당이라는 선거 기술에서 이미 빛을 발했다. ‘파렴치한 진보’ ‘무책임한 보수’라는 비판은 선거 패배에 비한다면 너끈히 감당할 만하다는 뻔뻔함이 거기에는 있다. 총선이 대선을 향한 총알받이이자 불쏘시개가 되었다.

공천에서도 민심과 상관없는 선거 기술자의 전략공천이 횡행하고, 선거운동도 프레임과 구도를 내세운 전략선거가 난무한다. 선거기간도 짧을수록 효과적이다. 어제 막을 올린 공식 선거운동 기간은 13일, 2주가 채 안 된다. 입후보자의 정책과 공약을 유권자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고 이해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공식 선거운동의 시간을 지배하는 이가 오로지 권력만을 목표로 하는 선거 기술자이니만큼 정책과 공약은 뒷전으로 내몰리기 일쑤다.

선거 기술자에 속지 않고 제대로 맞대응하려면 ‘유권자의 기술’이 필요하다. 선거가 권력 쟁탈의 싸움터가 아니라 정책과 공약을 통해 지역과 나라의 미래에 희망을 주는 전기가 되려면 유권자가 깨어 있어야 한다. 그 첫걸음은 야당심판론과 정권심판론이라는 선거 기술자의 프레임에 속지 않는 유권자 프레임을 마련하는 일이다. 지역과 나라의 미래를 권력 다툼에 영일이 없는 정치꾼에게만 맡겨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악의 국회라는 20대 국회에 대한 반성에서 유권자의 지혜가 발휘되어야 한다. 당리당략에만 골몰하는 국회를 싹 다 갈아엎겠다는 국회 심판론이 그것이다. 난장판 국회를 만든 정당과 우리 지역 국회의원이 걸어온 길을 반추해 국회를 판 갈이 하겠다는 결기가 요망된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코로나에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투표장을 찾는 투표율 제고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선거판은 이미 벌어졌고 이제 옥석을 가리는 일만 남았다. 이번에는 정당보다는 먼저 인물을 보고, 정책과 공약을 보는 투표의 기술을 걸어야 한다. 누구에게 우리 지역의 미래를 맡길 건지,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누가 책임질 것인지, 말 많고 탈 많은 정치를 개혁할 적임자는 누구인지 결단의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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