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꼼수와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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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지도자를 스스로 뽑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어떤 정치체제보다 우월하다. 그런데 영국 수상을 역임한 처칠이 “민주주의는 가장 나쁜 통치 행태”라고 했다. 그가 보기에 선거제도가 언제나 훌륭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선출하진 못했다는 것이다. 미국 29대 대통령이었던 하딩은 외모 말고는 내세울 것이 전혀 없는 최악의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 히틀러도 감언이설로 독일 국민을 속였고, 나아가 세계를 전쟁의 광란으로 몰고 갔다. 이들도 선거에 의해 뽑혔으니 처칠의 말이 “옳다구나” 하면 오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과거 어떤 제도보다 더 낫다”는 게 처칠의 결론이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비록 지도자를 잘못 뽑더라도 다음 선거에서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고, 그가 권력을 잡은 때조차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여야 거대 양당, 비례위성정당 창당
언론사들, “꼼수”라며 싸잡아 비판
비판만으론 현실 정치 바뀌지 않아
대안·미래 함께 제시하는 언론 기대

이런 점에서 선거는 민주주의의 알파요 오메가다. 덩달아 선거 국면에서 언론의 역할은 더 없이 중요하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의 자유’를 헌법에 보장한 이유도 국민이 대리인을 잘 선택하도록, 올바르고 도움 되는 정보를 제공하라고 힘을 실어준 것이다. 혹 권력에 쓴소리를 하더라도 탄압 당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 둔 것이다.

그렇기에 21대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 전에 언론을 통해 가장 자주 접했던 단어가 ‘꼼수’였던 것은 두고두고 아쉽다. 말 그대로 ‘쩨쩨한 수단이나 방법’이라는 것인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인한 사달이다. 선거법 개정에 반대했던 제1야당이 비례위성정당이라는 꼼수를 두자, 그것을 꼼수라 비난했던 집권당도 같은 꼼수로 대응했다. 이에 언론이 싸잡아 또 꼼수라고 훈수를 뒀다. 바둑에서는 묘수를 세 번 둬도 진다는 데, 꼼수만 난무하니 21대 총선은 시작부터가 난장판이었다.

이왕 바둑 얘기를 했으니, 바둑 세계에서는 꼼수에 어떻게 대처할까? 정수 혹은 정석으로 대응한다. 올바른 수를 알고 있으면 꼼수의 노림은 결코 통하지 않는다. 정치는 둘째 치고, 언론에 대해 아쉬운 지점이 바로 여기다. 언론은 왜 정당들의 꼼수 행태를 꼼수라고만 지적했는지 모르겠다. ‘위기십결(圍碁十訣)’이란 ‘바둑의 십계명’이 있다. 부득탐승(不得貪勝), 이기려고 욕심을 부리면 얻지 못한다. 사소취대(捨小取大), 작은 이익을 버리고 대세의 요소를 취하라. 봉위수기(逢危須棄), 위험에 처할 때는 버려라. 신물경속(愼勿輕速), 경솔하게 빨리 두지 말고 신중히 생각하라. 세고취화(勢孤取和), 상대 세력 속에 고립돼 있으면 타협의 길을 모색하라. 십계명을 다 거론하지 않더라도 따끔한 훈계를 할 수 있었다.

물론 바둑의 교훈을 현실 정치에 접목하는 것이 그대로 딱 들어맞지 않는 측면도 있다. 개인 대 개인의 대결이 아닌 정당 대 정당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김부겸, 김영춘 등 몇몇 여당 의원들도 비례위성정당 참여에 반대하는 소신을 피력했다. 하지만 당론을 주도할 만큼의 정치력은 발휘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35개 정당이 비례대표에 참여해 47개 비례대표 의석을 놓고 경쟁하게 됐다. 비례대표 투표용지 길이만 역대 최장인 48.1㎝로, 첨단 디지털 시대에 수개표를 하는 촌극이 벌어지게 생겼다.

이럴 참이면, 전체 유권자 중에서 ‘단순 무작위 추출’을 통해 비례대표를 뽑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통계학에서는 이 방법이야말로 대표성을 가장 잘 담보한다고 한다. 뚱딴지 같은 소리가 아니다. 이는 민주주의 제도를 인류사에 처음 소개한 아테네에서 일찍이 시행했었고, 이를 현대에 재조명한 학자들도 있다(<추첨 민주주의>). 투표권을 가진 모든 유권자에게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둔다면 선거가 얼마나 설레고 기대될까? 누가 뽑혀도 9명의 유능한 보좌관이 1명의 국회의원을 잘 보필할 테니 큰 문제도 없어 보인다. 이렇게 선출된 비례대표 47명이 원내 교섭단체를 결성해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게 진정한 민의 표출이 아닐까?

비례위성정당의 최대 수혜자에서 최대 피해자로 전락한 정의당 관련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비례위성정당 논란을 지켜본 언론인들도 억장이 무너졌을 법하다. 그렇지만 비판은 현실을 극복하지 못한다. 꼼수를 꼼수라고 지적해본들 현실 정치는 바뀌지 않을 것이고, 국민들에게 정치 혐오감만 심어줄 공산이 크다. 비례위성정당은 엎질러진 물이니 넘어가자.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라도 잘하면 될 일이다. 지역언론은 유권자가 지역사회에 가장 필요한 정책과 인물을 가려내도록 비판을 뛰어넘어 대안과 미래를 함께 제시해 주길 바란다. 그리하여 부산의 희망을 얘기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선거의 장을 마련했으면 한다. 21대 국회가 뱅크시라는 화가가 묘사한 ‘위임된 의회’ 꼴이 나지 않도록, 시민들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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