삑~삑~ 놀라서 본 재난문자엔 “전 구민 5만 원 지원 검토”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지난달 31일 오후 4시 15분께 부산 영도구는 ‘자체 지원을 논의할 계획’이라는 내용의 긴급재난문자를 전송했다. 독자 제공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쏟아 내는 재난문자가 코로나19로 지친 시민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다. 심지어 일부 지자체에서는 확정도 안 된 사업을 검토하겠다는 내용까지 발송하면서 긴급 상황에 써야 할 재난문자가 홍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영도구, 검토 단계서 생색내기
구정 홍보용으로 재난문자 남용
한 달간 16개 구·군 253건 발송
마스크 무상배부 경쟁적 홍보도
긴급상황에만 국한해서 보내야

지난달 31일 오후 4시 15분께 부산 영도구는 ‘영도구민 전체 5만 원 긴급지원 검토’ ‘많은 재원이 소요되므로 부산시와 정부 지원금 분담액을 해결한 후 자체 지원을 논의할 계획입니다’는 내용의 긴급재난문자를 잇달아 발송했다.

‘군민에게 1인당 10만 원 지급(기장군)’ ‘전 구민에게 마스크 1인 2매 배부 예정(부산진구)’ 등 자체 지원 사업을 재난문자로 알린 건 영도구가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재난문자를 받은 시민들은 ‘결정도 안 난 사업을 논의하겠다’는 내용이 긴급재난문자로 오는 게 전례 없던 일이라며 불만을 쏟아 내고 있다. 영도구 동삼동에 살고 있는 김 모(34) 씨는 “긴급재난문자를 보고 구청 해당 부서에 지원금 받는 방법을 문의했지만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답변을 듣고 황당했다”면서 “지급이 아직 결정도 안 됐는데 굳이 이 내용을 긴급재난문자로 보내는 이유가 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긴급하지 않은 메시지까지 재난문자로 보내는 건 다른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6일 국민재난안전포털에 따르면 지난 한 달 동안 부산의 16개 구·군이 발송한 재난문자만 253건에 달한다. 하루 평균 8건 이상의 재난문자가 시민에게 살포된 셈이다. 구·군별로 살펴보면 기장군이 45건으로 가장 많았고 부산진구(37건), 동래구(25건), 사하구(22건) 등이 뒤를 이었다.

물론 코로나19 관련 생활안전수칙이나 확진자 동선 등 재난 정보를 알린 문자도 있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는 재난문자를 빙자해 구·군 자체 지원 사업을 홍보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특히 기장군의 마스크 무상 배부 정책이 큰 호응을 얻자 이후 지자체 간에 경쟁이 붙으면서 ‘모든 구민에게 1인당 마스크 3매씩 통·반장이 직접 가정 방문 배부 계획(사하구)’ ‘오늘부터 전 주민에게 1인당 마스크 3장씩 직접 배부(남구)’ 등 마스크 무상 배부 관련 재난문자가 속출했다.

정부 규정에 따르면 이는 명백한 ‘재난문자’ 남용이다. 행정안전부는 2017년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을 정하고 지자체는 관할 구역 내에서 산불, 산사태, 댐 붕괴 등으로 초동 대응과 주민 대피가 필요한 상황에서만 재난문자를 보내도록 했다. 익명을 요구한 부산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여러 구·군이 앞다퉈 자체 지원 사업을 밝히면서 지자체 간 경쟁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재난문자는 별도 요금도 들지 않으면서 ‘시민 안전’이라는 명분도 있어 선출직인 지자체장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홍보 수단인 셈”이라고 귀띔했다.

불필요한 재난문자가 무차별적으로 살포돼 지친 시민들을 더 힘들게 하자 불필요한 문자 발송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산에서 10여 년째 택시 기사를 하는 최 모(57·부산진구 당감동) 씨는 “업무 특성상 운전하는 시간이 많은데 재난문자로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정작 들여다보면 대부분은 긴급하지 않은 내용”이라며 “제발 확진자 동선 등 꼭 알려야 할 때만 재난문자를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