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 가르기’ 정치 세력에 준엄한 심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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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 수석논설위원이 보는 4·15총선

지난 4일 오후 부산 남구 용호로에서 열린 한 후보의 유세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들이 연설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밥은 먹고 다니냐?" 보이지 않는 연쇄살인범이 건넨 말에 놀라 잠이 깼다.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으로 장밋빛 미래가 열렸다고 생각했는데…. 자고 일어나니 ‘살인의 추억’ 시절로 돌아가 쫓기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먹고 살기가 힘들어졌다. 세계대전을 방불케 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전쟁 중에 열리는 4·15총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깨나 치러 봤다는 선수들도 이런 선거는 처음 봤다고 혀를 내두른다. 가라앉은 느낌마저 드는 이상한 선거다. 선거운동은 유권자와의 거리 좁히기인데, 특히나 정치 신인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벽에 부닥쳤다.

코로나와 전쟁 중에 펼쳐지는 총선
조용한 선거, 의료인 전진 배치 눈길
꼼수 위성정당 창당에 정책 논의 ‘뒷전’
동남권 관문공항 아무도 관심 안 가져
지역 위해 열심히 뛰어 줄 대표 필요
풀뿌리 지방의회 출신들 성과도 주목


코로나 사태는 각 당의 서로 다른 철학이 나타나야 할 비례후보 1번에 의료계 인사를 내세우게 만들었다. 더불어시민당 신현영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민생당 정혜선 가톨릭대 보건대학원 교수, 국민의당 최연숙 대구 동산병원 간호부원장이 그렇다. 미래한국당의 경우에는 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이 후보 명단에 올랐지만 후순위로 밀리자 사퇴하는 일도 있었다. 기왕 정치 일선에 나선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우리 사회의 백신과 치료제가 되어 주길 기대한다. 이번 총선에 출마하는 의사는 모두 14명. 오랜만에 수술복을 입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저 높은 곳’을 향해 열심히 뛰고 있다. 달려라 철수!

지난해 말 행사장에서 만난 한 국회의원이 "정치는 편이 되어 주는 것"이라고 인사말을 해서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이번 총선의 가장 큰 특징은 극심한 편 가르기다. 더불어민주당 공천 결과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대목은 금태섭 의원을 경선에서 탈락하게 만든 일이었다. 민주당에서 유일하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대해서 박힌 미운털 때문이었다. 국론이 양분된 대사건이었던 만큼 민주당 내에도 당론과 다른 의원이 있어야 정상이다. 이러니 미래통합당으로부터 "조국을 살릴 것이냐, 대한민국 경제를 살릴 것이냐"라는 소리를 듣는다. 통합당도 막상막하다. 서울 강남 병에 ‘청년·기업가·여성’의 삼박자를 갖춘 김미균 후보의 공천 취소는 많이 아쉬웠다. 문재인 대통령이 준 선물에 SNS를 통해 감사 인사를 올렸고, 대통령의 핀란드 순방에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했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그 자리에는 유기준 국회의원의 동생 유경준 전 통계청장이 전략공천됐다. 그걸 보고 청년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두툼한 선거 공보물에는 고색창연한 느낌의 이 당 저 당이 포함되어 있었다. 민주주의가 후퇴한 것 같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에 대해 정의당 김종민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미래한국당이란 좀비 정당에 민주당이 물려 똑같이 민주주의를 갉아먹는 좀비가 됐다"고 표현한 것에 공감한다. 넷플릭스 ‘킹덤’ 시즌 2에는 권력의 화신 계비 조 씨가 "내가 가지지 못하면 아무도 가질 수 없다"며 좀비들을 궁궐에 푸는 장면이 나온다. 좀비에게 물리면 사람의 피와 살을 탐하는 괴물일 뿐, 이미 우리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다.

이번 선거는 코로나 사태에다 벼락치기 위성정당 창당으로 정책 논의는 뒷전이 되었다. 공부할 시간이 없었으니 제때, 제대로 된 공약이 나올 리 만무하다. 아무리 코로나 때문이라지만 지역 최대 현안인 동남권 관문공항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후보가 없다니 너무한 것 아닌가. 선거 막판에 민주당 부산시당이 내놓은 ‘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의 중심도시’, 통합당 부산시당의 ‘부산해양특별시’ 대표 공약도 그렇다. 부·울·경 메가시티는 수도권 일극주의에 맞서는 옳은 방향이지만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해양특별시는 17대 총선을 앞둔 2004년 한나라당 부산시당이 ‘부산경제 살리기 10대 약속’에 넣어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미완성으로 끝낸 저서 <진보의 미래>에서 사실상 중도를 지향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초기인 2017년 현충일 추념사에서 "이념정치, 편 가르기 정치를 청산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치는 청년을 보듬고, 어려운 사람들의 편이 되어 줘야 마땅하다. 편을 갈라 표만 탐하는 정치 세력은 준엄하게 심판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를 통해 평소에는 잊고 살았던 지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있다. 어제 <부산일보>에는 부산저축은행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가 한 후보 지지를 선언한 기사가 단신으로 실렸다. 사태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초선의원이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 문제를 먼저 나서서 묵묵히 해결해 자신들도 힘이 되어 줘야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지방소멸시대’를 맞아 우리 지역을 위해 열심히 뛰어 줄 대표가 필요하다. 다수의 풀뿌리 지방의회 출신들이 어떤 성과를 낼지도 주목이 된다. 우리의 미래를 지킬 무기는 표다.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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