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환(幻) / 송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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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로

수상한 사람이

지나갔다



어깨에 닿을 듯 늘어진

벚꽃나무 가지와

어떠한

접선도 없이!



아무것도 의심할 것 없는

화창한 사월의

어느 날 오후




-송찬호 시집 중에서-


일주일 서울 갔다 오니 동네 벚꽃이 거의 다 져버렸다. 차를 몰고 급히 달맞이 고개를 달려가 봤지만 이미 절정이 지나버렸다. 올해 부산의 벚꽃은 내게 무성한 소문처럼 귀로 피었다가 귀로 사라져버렸다. 때를 놓친 것이다. 그렇게 때를 놓치지 않으려고 사람들은 인산인해를 이루며 꽃을 찾아 나선다. 꽃과의 거리는 아무리 가까워도 멀게만 느껴져서 끝내 가지를 꺾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어깨에 닿을 듯 늘어진 벚꽃나무 가지’에도 ‘어떠한 접선도 없이’ 지나가다니! 그는 정말 ‘수상한 사람’ 아닌가. 그나저나 올 사월 우리는 모두 수상한 사람이 되어야 할 판이다. 화창하지만 의심스러운 사월이 가고 있다.

김종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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