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인문학 기행] 7.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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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만나는 동서고금 예술의 향연

매년 900만 명이 방문한다는 루브르박물관 전경.

국내외 관광객들이 박물관 회랑을 돌며 전시품을 둘러보고 있다.
프랑스 파리 여행을 가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루브르박물관이다. 연간 방문객만 900만 명이라고 하니 하루 2만 5000명가량이다. 세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박물관 가운데 하나다. 사람들은 대부분 루브르박물관이라고 부르지만, 공식 명칭은 ‘대루브르’이다.

십자군 전쟁 앞서 건설된 방어용 성채
18세기 후반 예술가들 작업실·거주지
프랑스 대혁명 때 ‘대중 박물관’ 변신
스핑크스·모나리자 등 38만 점 소장
연간 900만 명 방문 프랑스 대표 관광지

■루브르박물관 역사

루브르박물관에 입장하려면 독특한 모양을 자랑하는 입구인 유리 피라미드에서 긴 줄을 서야 한다. 소지품 검사를 마치고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지하로 내려가면 고성 성채와 그 앞의 해자 흔적을 통해 루브르박물관 전시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성채와 해자는 이곳이 오래전에 군사시설로 역사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좋은 증거다.

루브르박물관은 수백 년에 걸쳐 여러 왕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건축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루브르의 기원을 연 사람은 1190년 당시 국왕이던 필리프 오귀스트였다. 그는 십자군 원정에 참가해 머나먼 중동으로 떠나기로 했는데, 그 사이 영국이 파리로 쳐들어올 것에 대비해 센강 일대를 막을 수 있는 성채를 건설했다. 이것이 오늘날 루브르박물관의 시초가 됐다. 박물관을 둘러보다 보면 건물 사이로 내부정원인 쿠르 카레가 보인다. 이곳이 필리프 오귀스트가 과거 성채를 처음 만든 곳이다.

루브르라는 이름의 유래를 두고 여러 가지 가설이 전해 내려온다. 그중 ‘늑대’에서 유래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성채가 만들어진 곳은 당시 ‘루파라’라고 불렸다. ‘늑대가 우거진 숲’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라틴어로 늑대를 ‘루파’라고 부른다.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와 동생 레무스를 돌봐준 늑대 이름이 루파였다. 결국 루브르는 라틴어에서 기원한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루브르 성채를 르네상스 분위기가 풍기는 궁전으로 바꾼 왕은 16세기 프랑수아 1세였다. 중세유럽에서 사상 최초의 상비군을 만든 그는 이탈리아에 쳐들어갔다가 로마, 밀라노, 피렌체 등에서 엄청난 문화예술의 수준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로마에 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프랑스로 초빙한 것도 ‘프랑스 최초의 르네상스 왕’이라는 평가를 받은 프랑수아 1세였다. 레오나르도는 그때 미완성 상태였던 ‘모나리자’와 ‘세례자 요한’을 가져갔다. 두 작품이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덕분이었다.

루브르궁전의 회화 컬렉션을 확충한 왕은 루이 14세였다. 그는 미술에 관심이 많아 카라치, 렘브란트, 카라바지오 등 유럽 여러 나라 화가들의 미술품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그가 즉위할 때 150여 점에 불과했던 그림은 2000여 점으로 크게 늘었다. 이 때문에 프랑스 재정부가 파산 위기에 몰릴 정도였다.

프랑스 왕가가 베르사유 궁전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이던 18세기 하반기 무렵 루브르궁전은 왕족의 총애를 받는 예술가들의 작업실 겸 거주지로 이용됐다. 예술가들이 모여 살다 보니 전시회가 수시로 열렸다.

루브르궁전이 박물관으로 바뀐 것은 프랑스대혁명 때였다. 혁명정부는 1793년 8월 10일 루브르궁전의 그랜드갤러리에서 박물관 개관식을 열고 국왕 소유 미술품과 여러 교회에서 압수한 유물 등 600여 점을 전시했다. 제1공화국 초창기 들어서는 ‘국가 박물관’으로 선포됐다. 부자들만 예술 작품을 보러 가는 제한된 공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된 것이다.

19세기 중엽 제2 제국의 나폴레옹 3세는 파리 대개혁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루브르박물관도 대대적으로 확장했다. 지난 350년간 역대 국왕들이 진행했던 증축 공사의 수준을 완전히 뛰어넘는 엄청난 규모였다. 오늘날 루브르의 모습은 이때 완성됐다고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조각품을 살펴보는 관람객.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 앞에 몰린 관광객들.


■루브르박물관 둘러보기

루브르박물관은 3개 전시관으로 이뤄져 있다. 고대 동양 유물, 고대 이집트 유물, 고대 그리스와 로마 유물, 중세와 근현대 회화·조각 등 총 38만 점의 예술작품, 유물 등이 보관돼 있다. 이 가운데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3만 5000점만 전시돼 있다.

루브르박물관에서 놓칠 수 없는 유물, 작품은 한둘이 아니다. 함무라비 법전, 구데아 입상, 다리우스의 궁사들, 스핑크스, 웅크리고 앉아 있는 율법학자, 사모트라케의 니케, 밀로의 비너스, 사비니 여인의 개입, 나폴레옹 1세 황제의 대관식 등이다. 워낙 전시품이 많다 보니 동선을 제대로 짜지 않으면 세계적 평판을 받는 작품을 놓칠 우려도 크다.

루브르박물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시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이다. 매일 이 작품을 보러 수만 명이 몰린다. 너무 인기가 높다 보니 방탄유리로 보호받고 있고, 별도 경비원이 배치돼 있다. 대부분 관람객은 ‘모나리자’를 보고 깜짝 놀란다. 대부분 사진으로만 본 그림이어서 매우 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정말 작기 때문이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다. ‘모나리자’ 크기는 가로 53cm, 세로 77cm에 불과하다.

‘모나리자’는 딱 네 번 루브르박물관에서 외출한 적이 있다. 첫 번째는 나폴레옹 황제 때문이었다. 그는 ‘모나리자’를 정말 좋아해서 자신의 침실 벽에 걸어놓았다. 두 번째는 1911년이었다. 그림을 도둑맞은 것이다. 영원히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2년 뒤 이탈리아에서 발견돼 귀가했다. 세 번째는 제2차 세계대전 때였다. 독일군이 파리로 들어오자 루브르박물관 직원들은 약탈을 피하기 위해 대부분 작품을 피신시켰다. 마지막 외출은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의 부탁으로 이뤄졌다. 미국 워싱턴과 뉴욕에서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외국 전시회를 연 것이었다.

루브르박물관에서는 유명 작품 앞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교사나 안내인의 설명을 듣는 어린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프랑스 파리가 유럽 문화예술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릴 때부터 많은 미술관, 박물관에서 수많은 대작들을 보고 자랄 수 있는 환경 덕분이 아니었을까.

루브르박물관에서는 대작 앞에 이젤을 세워놓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을 더러 볼 수 있다. 이른바 ‘베끼기 작가들’이다. 루브르박물관 직원들은 이들을 제지하지 않는다. 대신 두 가지만 지키라고 요구한다. ‘캔버스가 원본보다 커서는 안 된다, 모작에 원작자 이름을 써넣어서는 안 된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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