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급식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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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며칠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출마해 선거운동에 고생하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보니 감회가 복잡하다. 처음 서울시장에 당선될 당시 오 전 시장은 민선 서울시장 선거사상 최연소 당선자이자 최대 격차의 승리를 거둔 당선자였다. 당시의 경쟁자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었으니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음에도 압승을 거둔 것이다. 오 전 시장이 재선을 할 당시의 경쟁자는 더 막강한 한명숙 전 총리였다. 그런데도 또 승리를 거두었으니 오 전 시장이 단숨에 당시 여당의 차세대 지도자,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로 부상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랬던 정치인 오세훈이 지난 몇 년 동안 칩거에 가까운 인내의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유는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바로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 실시를 둘러싼 주민투표의 패배 때문이다. 중학교까지 전면 무상급식이 실시되는 것은 물론 일부 지자체에서는 고등학교까지도 무상급식이 실시되고 있는 지금에 와서 보면 우스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때는 겨우 초등학교 무상급식을 전면적으로 실시하느냐 선별적으로 실시하느냐를 놓고 온 나라가 니 편 내 편으로 두 쪽이 나서 죽일 듯이 싸웠었다. 그때 무상급식 전면실시에 반대했던 정치인들과 일부 언론의 논리는 이러했다. 재벌의 손자들까지 공짜로 밥을 줘야 하느냐? 없는 글재주나마 나도 그때 어느 칼럼에서 이런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대한민국 초등학교에 재벌의 손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재벌의 손자와 서민의 손자가 나란히 앉아 함께 밥을 먹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참교육이고 그런 사회가 진정한 민주사회 아니겠느냐?

전면 무상급식 놓고 벌어졌던 논쟁
재벌 손자도 공짜 밥 주느냐 했지만
빈부 차별 없는 평등 대우가 참교육

코로나 극복 위한 긴급재난지원금
소득 하위 70%만 선별 지급하기로
보편적 복지 외쳐 온 정부 자기모순

정부가 지난 3일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긴급재난지원금 지급과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터넷에서 어느 외국인이 올린 재미있는 글을 읽었다. 이 외국인은 지금 우리나라에 머물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모든 자가격리자들에게 음식과 식수는 물론 소독약과 비타민을 포함한 생필품들을 무료로 준다고 놀라워했다. 여러 외국에서 정상들이 직접 전화를 해 우리나라의 방역 대응을 칭찬하면서 도움을 요청한다는 기사와 함께, 비록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마음이 뿌듯해지는 일이다. 그런데 자가격리자에게 주는 이 물품들을 두고 또 인터넷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한다. 부자들에게까지 왜 생필품을 지원하느냐는 것이다. 뜻밖의 상황에서 무상급식의 추억이 소환되는 순간이다. 먼저 자가격리란 말 그대로 생필품을 사러 밖에 나가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럼 이분들은 밥도 굶어야 하나? 더 중요한 이유는 부자든 아니든 그분들 모두가 우리 국민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부자들에게는 지원이 필요 없다는 주장은 바로 보편적 복지에 대한 오해와 무지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물론 실업급여나 출산장려금처럼 대상자를 선별해 실시되어야 하는 복지도 있다. 그러나 부자든 아니든 모든 국민은 위험에 놓였을 때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고 국가는 그럴 의무가 있다.

무상급식 논쟁 때 보편적 복지를 주장했던 야당이 지금은 여당이 되고 같은 분들이 청와대와 정부의 주요한 직책을 맡고 계시다. 그런데 얼마 전 정부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긴급재난지원금을 소득 하위 70%만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금까지 보편적 복지를 주장해 온 정부와 여당의 자기모순일 뿐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70%를 선별하는 데 들 시간과 비용을 생각해 보면 정부가 지금 국민들이 놓인 상황의 심각함과 시급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70%를 조금 넘겨 지원금을 받지 못한 국민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은 또 얼마나 클 것인가? 한 마디로 문재인 정부의 정책들 가운데 가장 나쁜 정책이 드디어 나온 것이다. 기껏 예산을 들여 국민들의 신뢰를 잃을 정책을 하겠다는 이유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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