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여론조사의 세계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2016년 11월 제45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첫 여성 대통령을 꿈꾸던 힐러리 클린턴의 도전이 막을 내렸다. 당시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과 언론은 힐러리가 과반의 선거인단을 확보해 손쉽게 백악관에 입성하리라 예상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언론사뿐 아니라 공화당에 경도됐다는 폭스뉴스까지 이런 예상을 했을 정도였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후 미국 학계와 언론은 힐러리와 함께 여론조사 기관을 선거의 ‘패자’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여론조사의 흑역사는 미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같은 해 4월 13일 치러진 20대 총선 서울 종로구 경우를 보자. 당시 KBS와 연합뉴스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3월 20~22일 실시,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P)는 오세훈 후보가 정세균 후보에 17.3%P 앞섰다. 오차범위 두 배 가까이 격차를 벌리는 오 후보의 압승을 예상한 것. 정당 지지율 역시 오 후보의 새누리당(42.5%)이 정 후보의 더불어민주당(16.1%)에 크게 앞섰으니 달리 볼 여지도 크지 않았다.

이후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진행된 다른 기관의 사전 여론조사에서 둘의 격차가 오차범위 내로 좁혀지긴 했지만 오 후보의 승리를 예측하는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개표 결과 오 후보를 선택한 종로구 유권자는 39.7%에 그친 반면, 절반이 넘는 52.6%의 유권자가 정 후보를 국회로 보내는 데 동의했다.

사정이 이러니 선관위에서는 선거 일주일 전까지의 여론조사 결과만 공표하거나 인용해 보도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 보도가 실제 투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우선 특정 후보 지지자가 상대 후보의 여론조사 결과가 압도적으로 앞선다는 보도를 접한 경우, ‘내가 투표해도 뒤집기는 힘들 것’이라는 기권 심리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대로 지지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맹렬히 추격 중이라면, ‘나는 물론 지인들까지 독려한다면 뒤집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 심리를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이유로 꼽힌다.

언론에서는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된 일주일 동안의 표심 향방을 알 수 없다며 ‘깜깜이 선거’라고 칭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선거결과는 사전 여론조사 향방에 의해서가 아니라 실제 투표에 참여하는 적극적 유권자에 의해 갈린다는 점이다. 최소한 앞으로 4년간 일상을 좌우할 결정권이 바로 우리 손에 달렸다는 것만 기억해도 충분할 것 같다. 마침 오늘부터 이틀간 사전투표가 진행된다.

김희돈 교열부 부장 happyi@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