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코로나와 총선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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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최근 SNS상에 떠도는 글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름조차 생소한 아프리카 빈곤국 차드(Chad)의 한 문인이 쓴 글이라며 지인이 보내온 것이다. 제목은 ‘아무것도 아닌 그 하찮은 것에 흔들리는 인류.’ 그 하찮은 것이 코로나바이러스임을 알아차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무스타파 달렙(Moustapha Dahleb)? 전혀 생소한 이름이다. 인터넷으로 작가를 검색해봐도 거의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동명이인으로 보이는, 은퇴한 알제리 출신 프랑스 프로축구 선수 관련 내용뿐. 그러나 누가 썼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 글 자체가 이미 빛나는 통찰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세계와 인류의 과거-현재-미래를 꿰뚫는 혜안이 시적 언어로 승화돼 있다.

‘작은 미생물이 지구를 뒤엎고 있다. 그것은 모든 것에 새로운 의문을 던지고 이미 안착된 규칙들을 다시 재배치한다. 다르게, 그리고 새롭게.’ 정말 그렇지 않은가. 서방 강국들이 일으킨 지구촌 분쟁과 국지적 갈등을 한방에 끝장낸 것도, 세금 완화라든지 유류 가격 인하, 환경 오염 줄이기, 사회보장 강화 등을 순식간에 성취해낸 것도 이 작은 미생물이다.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모두 한배에 타고 있음을 깨닫게 했고… ‘연대성’이란 단어의 가치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바이러스 앞에서 우리는 국적과 계급, 신분, 신앙을 떠나 모두 똑같이 연약한 존재임이 드러났다. 이전에는 실현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평등’에 대한 깨달음, 이 얼마나 혁명적인가.

코로나 사태, 인류사의 거대한 변곡점
기존 법칙과 기준·시선 일거에 전복

우리 정치는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
시대 성찰 없이 과거에 갇혀 있어
찍을 정당도 후보도 보이지 않는 총선
유권자들이 막막한 어둠 열어젖히길

코로나의 예기치 못한 역습은 인류 역사의 거대한 변곡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는 단순한 메타포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현실이다. 코로나는 무수한 희생과 손실을 낳았지만 기존의 법칙과 기준, 그리고 세상 보는 눈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신화들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코로나의 역설’이다.

전문가들은 크게 몇 가지를 지적한다. 먼저 미국. 확진자가 급증하자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 통제력을 상실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목도됐다. 냉전 이후 세계 질서 재편을 주도해 온 최강국의 모습이 아니다. 선진국으로 불리는 서방 국가와 일본이 보여준 민낯도 마찬가지다. 공적 기능이 사적 욕망에 가로막히면서 우월성의 허상이 벗겨졌다. 재난과 위기 극복에 결함을 가진 시스템으로서, 시장 기능의 한계도 드러났다. 이제 경제 회복과 재분배를 위해 국가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데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이런 세계적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장 한탄스러운 영역을 꼽으라면 단연 우리나라 정치다. 세상은 판 자체가 뒤집히고 있건만, 총선을 코앞에 둔 선거판은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의 가소로운 헛발질을 닮았다. 이미 출발부터 난장이었다. 정치판 속성이 아무리 ‘윤리보다는 실리’라지만 곧 사라질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 정도로 저급할 줄은 몰랐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되돌리는 짓이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과거로 회귀한 공천 파동도 예나 지금이나, 여나 야나 따로 없었다. 선거 국면만 되면 가동하는 소모적 프레임은 또 어떤가. 다시 조국의 이름이 거론되고 이에 뒤질세라 윤석열이 호명된다. 정권심판론과 야당심판론이 충돌하고 친일-친중 구도까지 가세하는 마당이다. 그 사이사이 막말과 비방이 ‘제 버릇 개 못 준’ 격으로 선거판을 더럽힌다. 당장 몇 표 더 받겠다고 국회의원 조금 더 내겠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에 무슨 미래가 있을까.

국민들 눈에는 이 모든 것이 허망할 따름이다. 코로나 사태를 겪고 보니 그동안 우리 정치가 얼마나 근시안적이었는지 다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기존에 구축된 모든 것은 모래성과 같고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할 때다. 정치도 정당도 예외는 없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영원한 주인일 수 없다. 이게 코로나가 한국 정치권에 죽비처럼 내리치는 역설의 가르침이다.

바로 그래서 지금 가장 불행한 이는 이 땅의 유권자다. 이번 총선이 새로운 시대의 희망을 보여줄 리더를 뽑는 선거가 되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미래 비전을 보여주는 정당과 후보도 없고, 코로나 사태를 성찰하고 이후를 대비하는 정당과 후보는 더더욱 보이지 않는다. 선뜻 찍어주고 싶은 정당도 후보도 보이지 않는 막막함. 정치와 선거판은 구태에 머물러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막막한 어둠을 우리 눈 밝은 유권자들이 열어젖히는 수밖에 없다. 이번 총선은 역대 그 어떤 총선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당장의 선택이 힘들다면, 이 땅을 살아가게 될 우리의 후대를 생각하자. 후손들이 꿈꿀 만한 세상, 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나라를 생각하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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