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삼의 타초경사(打草驚蛇)] 떠나가는 나라에서, 돌아오는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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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대 자유전공학부 특임교수

조선이 망한 뒤로 여태껏 이 땅은 떠나야 할 곳이었다. 일제 식민지에서 지사들은 중국으로, 노동자들은 일본으로, 농민들은 만주로 떠났다. 해방 후에는 미국이 꿈의 나라였다. ‘아메리카’라는 단어에서는 향기가 풍겨 나왔다. 미국엔 ‘광야를 달려가는 애리조나 카우보이’가 있고, 아메리카의 차이나타운은 ‘태평양 바라보며 꽃구름도 깜빡깜빡’거렸다. 한복을 벗어 던지고 양장으로, 양복으로 갈아입고 싶었다.(노명우 <인생극장>) 그 후로도 궁핍은 사람들을 월남의 밀림으로, 독일의 광산으로, 중동의 사막으로 몰아냈다. 누구도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 꿈은 서구-근대-문명, 세 마디의 조합이었다. 서구화, 근대화, 문명화는 귀에 익은 구호다. 여기 ‘화(化)’는 결핍의 단어다. 서유럽에 뜬 문명의 북극성을 따라 변화하자는 뜻이 서려 있다. 서구-근대-문명을 한마디로 으깨면 ‘양(洋)’이 된다. 양복을 입고 양식을 먹고 양옥에서 살면서 서양 학문을 배우는 삶. 이것이 우리 근현대사를 요약한다.

근대·문명화의 핵인 서구 국가들이
한국을 본받으려는 미증유의 시대
과학·민주주의 힘겹게 꽃피운 결과
이제 문명 융합의 가능성 보여 줘야

그동안 서구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서구 근대를 뒷받침한 것은 약탈 무역과 식민지였다. 식민지를 놓고 내분이 일어난 것이 1·2차 세계 대전이었고 식민지를 잃어버리자 서구는 쪼그라들고 말았다. 해가 지지 않던 제국, 영국의 총리가 최근 코로나19에 감염된 일은 상징적이다(쾌유를 빈다).

서구 문명이란 또 무엇이던가? 아편전쟁으로 중국이 한낱 영국의 상선대(商船隊)에 깨진 뒤, 동아시아 지식인들은 그들의 힘을 연구했다. 그리고 과학과 민주주의라는 결론을 얻었다. 동양이 과학에서 뒤떨어졌기에 무력에서 졌고, 민주주의가 없어서 정치에서 졌다는 깨달음이다. 동아시아 근대화는 과학을 배우고 민주주의를 익히는 과정이었다. 다만 중국이든 일본이든 과학의 근대화는 이루었는지 몰라도(자연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중국과 일본에 유독 많다), 민주주의는 그렇지 못한 듯하다.

민주화는 오로지 한국이 성취한 근대화의 꽃이다. 지난 2017년 한국의 촛불혁명을 두고 독일의 유력지 <디 차이트>가 내린 평은 인용할 만하다. ‘유럽과 미국은 이제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배워야 한다.’ 서구에서 민주주의를 수입한 한국이 ‘원산지’보다 더 모범적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다는 얘기다. 민주주의는 아시아에 맞지 않는다는 ‘아시아적 가치’ 논쟁은 끝났다고도 했다. ‘평화롭고 질서정연하면서도 강력한’ 한국의 ‘성숙한 민주주의’가 ‘용기와 열정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방법’을 세상에 알려주었다고 격찬했다.(김누리 교수)

이번 참의 코로나19 와중에서 한국이 드러낸 힘은 의료 과학기술과 더불어 발 빠른 행정 당국, 자발적인 시민 참여, 정보의 투명성과 공개성 그리고 정부의 신뢰성이었다. 이들을 한마디로 하면 민주주의가 된다. 촛불혁명에서 드러난 시민의식과 민주주의가 코로나 사태 대처 과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서구 근대문명의 핵심인 과학과 민주주의가 한국 땅에 이식되고 체화된 표지다.

그래서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에서, 아메리카에서 동포들이 귀환하고 있다. 이건 우리 역사에서, 특히 근현대사에서 유례가 없던 일이다. 더욱이 서구의 국가들이 한국을 본받으려 하는 것은 초유의 사건이다. 코로나 이전과 그 이후는 전혀 다른 세계일 것이라고들 전망하는데, 적어도 떠나가는 나라에서 돌아오는 나라로 바뀌고 있음은 기록해 둘 만한 일이다.

놀라운 점은 선현들이 사람이 몰려오는 현상을 좋은 정치로 지적했다는 사실이다. 누가 “정치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공자의 답변이 그렇다. “가까운 곳 사람들은 기뻐하고, 먼 데 사람들은 몰려오는 것이지요(近者悅 遠者來).”(<논어>) 실은 사람이 몰려오는 것을 좋은 정치로 삼는 것은 동양사상의 공통점이다. 노자 역시 정치를 ‘계곡으로 흘러드는 물길’에 비유한 것이 그렇고, ‘새를 잡으려고 산을 헤매지 말고 숲을 만들어 몰려들게 하라’는 속담 또한 정치란 권력이 아니라 매력에 있다는 뜻이다. 반면 제국주의는 자기 것을 강요하고 타자를 몰아내는 폭력성을 내장한다. 지금 우리는 정치의 축이 폭력에서 매력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고 있다.

떠나감에서 돌아옴으로의 전환은 새로운 숙제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돌아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다시 한번 공자의 지혜를 빌려본다. ‘문화의 힘(文德)’으로 편안하게 해주라는 것(修文德以來之 旣來之則安之). 무력과 폭력, 지배와 억압이 아니라 문화의 힘으로 함께 살아가는 나라를 만들라는 조언이다. 서구-근대-문명이 아니라, 동양의 포스트-코로나 문명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우리에게 주어진 과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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