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D 전광판과 고무밴드로 시간과 공간을 설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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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이배 설치작가 2인전

김덕희 작가의 ‘Scattering Time.’ 갤러리이배 제공

김덕희 작가와 손몽주 작가는 비슷하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비슷했다. 40대·여성·설치미술이라는 공동 키워드를 가진 두 작가는 작품으로 ‘삶의 이야기’를 전하는 점은 비슷했지만, 그 표현 방식의 결은 달랐다. 부산 수영구 민락동에 있는 갤러리이배의 특별 기획전시 ‘예술 속의 대담-Life in Depth’에서 두 작가를 만났다.

전광판에서 발광 다이오드 분해
흩어지는 시간 의미 찾는 김덕희

■어느 정도의 시간이 영원이지?

김덕희 작가는 LED 전광판으로 시간을 이야기한다. “거리에서 전구가 붙은 간판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을 봤다. 자세히 보면 전구가 깜빡이는 것인데 왜 우리는 빛이 흐른다고 할까? 그러면 우리가 흐른다고 말하는 시간도 흐르는 게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작가는 시간을 쪼개 보기로 했다. “원자 단위까지 가면 시간이라는 것은 그냥 에너지가 들어갔다 나오는 것일 뿐이었다.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없다’는 말이 맞았다.”

시간에 대한 해석을 시각화하려고 상업용 LED 전광판을 분해했다. 안에 박혀 있는 빨강, 파랑, 초록 발광 다이오드를 검은 전선으로 연결해 밖으로 빼냈다. ‘흩어지는 시간’이라는 의미를 살리려고 발광 다이오드를 전광판 텍스트와 최대한 멀리 떼어 놓았다. 해체되지 않는 전광판 일부분으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영원이지?’라는 문구가 지나간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대사다. 바닥까지 흘러내린 전선 끝에서 발광 다이오드들이 천천히 깜빡인다.

시·분·초 단위로 시간을 숫자로 보여 주는 LED를 이용한 작품에서 발광 다이오드의 깜빡이는 속도는 각각 다르다. “사람마다 느끼는 시간은 다르다. 영원이라는 게 나에겐 1초일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겐 수백 년일 수도 있다.” 김 작가는 도쿄예술대 첨단예술표현과와 대학원 졸업 후 6년간 ‘공백기’가 있었다. 직장과 잠깐의 출가 생활에 쓰인 그 시간을 통해 ‘시간을 철학하는 작가’로 거듭났다.

김 작가의 작품 중 백미는 ‘아주 잠깐 꿈을 꾼 듯해’다. 높이 설치된 LED 전광판에서 폭포 같은 검은 전선이 쏟아져 내리고 그 위를 나비처럼 빛이 날아다닌다. 사람들의 속삭임을 아주 가까이서 담아낸 소리가 배경음으로 흘러나온다. “시간은 없을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야기와 의미를 만들고 살아간다. 그게 인간의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꿈에 비유해 봤다.”

손몽주 작가의 `Re Floating.`
오금아 기자

영도서 찾은 표류목에 밴드 연결해
중력 거스르는 자유 표현한 손몽주

■떠 있는 것, 중력을 거스르는 자유

손몽주 작가는 고무 밴드부터 표류, 스윙 시리즈까지 작품 전체 흐름을 보여 주는 ‘미니 회고전’을 선보인다. 창밖으로 수영만이 보이는 긴 복도를 따라 손 작가의 대표작인 고무 밴드 시리즈가 펼쳐진다. 회색 벽에는 흰색, 창과 복도 중간에는 연두색 고무 밴드가 공간을 분할하고 공간에 그림을 그린다.

“고무 밴드로 왔다 갔다 하면 벽을 만들 수 있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지울 수도 있고 틈새를 벌려 다시 볼 수도 있다.” 방향에 따라서도 해석이 달라지는 ‘선재’의 매력에 푹 빠졌던 손 작가는 2014년 홍티아트센터에서 ‘표류목 시리즈’를 시작했다. 낙동강을 떠내려오는 나무토막을 수많은 선을 이용해 공중에 띄운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표류목은 영도 앞바다에서 건진 것이다. 특히 고무 밴드 시리즈와 표류목 시리즈의 접점을 찾은 작품이 눈길을 끈다. “고무 밴드가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파도에 왔다 갔다 하며 떠밀려 온 나무토막을 밴드에 연결해 보여 주려고 보이지 않는 프레임 위에 표류목을 올렸다.” 늘어진 고무 밴드도 공중 부양한 표류목도 이어져 있지만,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는 않는 모습이다.

“최근 떠 있는 것에 관심이 많다. 부유한다는 것은 불안과 위험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중력을 거스르는 자유를 뜻하기도 한다.” 표류 또는 떠 있음을 관람객이 직접 체험하도록 한 것이 스윙 시리즈. 손 작가는 “광주시립미술관에 구름을 타는 느낌을 주는 ‘둥둥둥’이라는 작품을 전시 중인데 코로나19로 관람객을 못 만나고 있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 스윙 시리즈는 작가의 드로잉으로 만날 수 있다. 조각을 전공한 그에게 설치미술은 ‘공유’다. “김 작가와 작업 내용이 달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했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오는 느낌으로 두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우러진 전시가 된 것 같다.”

▶‘예술 속의 대담-Life in Depth’=5월 11일까지 갤러리이배. 051-756-2111. 예약 관람제.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김덕희 작가

■ 손몽주가 본 김덕희
가만히 앉아 보게 하는
깊이 있게 파고드는 작업

“김 작가는 철학적인 태도로 집중해서 더 깊이 있게 파고드는 작업을 하는 것 같다. 2인전은 처음인데 공부가 아주 많이 됐다. 영상 작업의 경우 오랫동안 시선을 붙들어 두기 어려운데 김 작가의 ‘아주 잠깐 꿈을 꾼 듯해’는 작품을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있게 하는 매력이 있다.” 
손몽주 작가

■ 김덕희가 본 손몽주
갤러리 밖 시선도 잡는
전체 동선을 고려한 작업
“손 작가는 전체 동선을 생각하는 작업을 해서 갤러리 밖 사람들의 시선까지 안으로 끌어들인다. 신경을 집중해서 도구를 사용하면 사람의 감각이 도구까지 이어진다. 손 작가의 표류목이 고무 밴드로 연결되면서 표류목의 감각이 공간 전체로 확장하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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