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명 논설위원이 보는 4.15총선] 내일은 20대 국회 심판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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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29일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장면.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복도에서 정의당 의원들이 지나가지 못하게 누워서 길을 막고 있다. 부산일보DB
내일은 21대 국회의원을 뽑는 공식 선거일. 부산 18곳을 포함해 전국 253개 지역구에서 투표가 이뤄진다. 47명의 비례대표 의원을 뽑기 위해 정당에도 한 표 던져야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지역구 후보자는 부산 74명을 포함해 전국에서 1101명. 평균하면, 4~5명의 후보 중에서 한 명을 추려내야 한다. 비례대표는 그보다 훨씬 복잡해 무려 35개 정당 중 하나를 찍어야 한다. 보통 일이 아니다. 일 안 하고 싸우기만 하는, 꼴 보기 싫은 정치인 뽑는 데 그리 공을 들여야 할까. 공을 들여야 한다. 아무리 싫어도 반드시 투표해야 한다. 왜? 정치인들 꼴 보기 싫으니까. 꼴 보기 싫은 정치인을 응징해 다시는 그런 꼴을 보지 않도록 해야 하니까. 그럴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다. 이번에 못 하면 4년을 또 기다려야 한다.


법률안 처리 등 국회 직무유기 심각
구체제 퇴출 실패, 정치개혁도 무산
정치 망친 주역들 이번에도 대거 출마
‘나쁜 사람’ 떨어뜨리는 게 투표 역할


■이 사람들, 참 일 안 했다

국회의원의 기본 책무는 입법, 즉 법률을 만들거나 고치는 일이다. 그런데 4년 전 뽑힌 20대 국회의원들, 제대로 일 안 했다. 직무를 유기한 것이다.

13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대 국회에서 각 위원회에 접수된 법률안이 2만 4003건이었다. 그중 법률로 반영된 것이 8246건으로, 전체의 34.4%에 못 미쳤다. 부결되거나 폐기 또는 철회돼서 법률로 반영되지 못한 것은 328건이었다. 법률로 반영됐든 아니든, 어쨌든 20대 국회의원들이 2016년부터 4년간 처리한 법안이 8574건인 것이다. 나머지 처리되지 못하고 계류된 법률안이 무려 1만 5429건이다. 발의된 법률안 전체의 64.3%를 내팽개친 것이다.

발의된 법률안 중 법률로 반영된 비율은 이전 역대 최저였던 19대(2012~2016) 국회 때보다 못한 것이었다. 19대 때는 발의된 1만 7822건의 법률안 중 7429건, 즉 41.7%가 법률로 반영됐다. 18대(2008~2012) 국회 때는 1만 3913건이 발의돼 6173건이 법률로 처리돼 44.4%의 반영률을 보였다. 그 때와는 발의된 법률안도 많았고 정치적 여건도 달랐을 테니 단순 비교는 무리라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그래도 20대 국회의원들의 직무 유기는 정도가 심하다.

20대 국회의원들은 스스로 내 건 약속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한국 매니페스토 실천본부가 20대 국회의원 244명의 공약 이행도를 분석한 자료가 있다. 지난 총선 당시 이들은 모두 7616개의 공약을 내걸었으나 올 2월 말까지 완료한 공약은 3564개로 46.8%에 그쳤다. 19대 국회의원들의 공약 완료율은 51.2%로, 그래도 약속의 절반은 지켰다.

여야 간 무한 정쟁을 벌였던 20대 국회니 당연한 결과이겠다. 일 안 하는 국회의 모습이 스스로도 민망했던지 지난달 말 여야에서 ‘중진’으로 불리는 몇몇 의원들이 ‘일하는 국회법’을 제안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다.



■20대 국회를 심판하자

20대 국회는 실패했다. 대다수 국민이 촛불을 들고 요구한 구체제 퇴출도 이루지 못했고, 스스로 주창한 정치개혁도 제 손으로 무산시켰다.

여야 간에 무한 정쟁으로 4년을 보내는 사이 우리 정치는 4년 전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때와 당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인 두 거대 정당의 진영 다툼이 그대로 재연됐고, 사라져야 할 극우 수구 세력은 탄핵 정국을 틈타 오히려 득세했다. 적폐 청산은 ‘조국 사태’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흐지부지됐다.

무엇보다, 정치를 개혁하겠다며 시도한 선거제 개편은 오히려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참극을 빚었다. 선거제 개혁의 취지는 유권자의 선택과 의석 점유율 사이 괴리를 줄이고, 소규모 신진 정치세력의 국회 진입을 허용해 정치지형에 다양성을 주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꼼수에 꼼수를 더해 개악으로 치닫더니 결국은 위성정당이라는 전에 없던 괴물을 탄생시켰다. 국민을 얼마나 얕잡아 보았기에 대놓고 그런 결과를 만들었을까.

더욱 가관인 것은 우리 정치를 그렇게 망쳐 놓은 주역들이 대부분 이번 총선에도 다수 출마한다는 사실이다. 대규모 물갈이 공천을 천명했으나 실제로는 불출마를 선언했던 현역 의원까지 소환하거나 전직 의원을 공천하는 등 돌려 막기식 공천에 그쳤다. 자기 당에서 선택받지 못 한 탈락자 중에서도 무소속 깃발을 흔들며 “살아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 이가 상당수다. 완전히 물러난다 하면서도 실제로는 자기 수하를 대신 내세운 이들도 꽤 있다.

21대 총선은 그런 20대 국회를 심판하는 선거여야 한다. 국회가 일 안 하고 염치가 없으면 국민이 고통받는다. 20대 국회에서 그 사실을 충분히 경험했다. 그런데 그런 20대 국회를 만들어준 것도 국민이다. 사람을 잘 못 보고 투표한 업보인 셈이다.

저들이 무슨 염치로 표를 달라고 하는지 화도 나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선거는 치러지게 돼 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따위 거창한 생각은 필요 없다. 그저 내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면 투표소에 무조건 가야 한다.

좋은 사람을 되게 하는 것도 투표지만 나쁜 사람을 되지 못하게 하는 것도 결국 투표다. 무관심과 기권은 떨어져야 마땅한 후보를 돕는 것이 된다. 20대 국회에서 어느 쪽이 딴죽을 걸고 어느 편이 몽니를 부렸는지, 나아가 21대 국회에서 또다시 그런 일을 벌일 사람이 누구인지 꼼꼼히 셈해봐야 한다. 국민이 깨어 있다는 사실을 정치꾼들에게 똑똑히 보여줘야 한다.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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