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철의 어바웃 시티] 전염병과 '도시 봉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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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요즘이다. ‘아무것도 만지지 마라’, ‘누구도 만나지 마라’라며 전염병 확산을 주제로 삼았던 영화 ‘컨테이젼’의 내용이 어쩜 이리도 정확하게 맞을 수 있을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며 안이하게 생각하던 사이 아이들의 개학은 미뤄지고, 재택근무도 연장됐다. 전 세계 도시 간 교류마저 끊기는 문명적 위기가 우리를 덮치고 있다. 영화에서처럼 도시에서의 약탈, 폭동까진 아니지만 대도시 ‘봉쇄’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은 세계 곳곳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전염병으로 인해 중국의 유서 깊은 인구 1000만 명의 도시 ‘우한’은 76일 동안 전면 봉쇄됐다. 현재는 밀라노, 베네치아를 비롯해 마드리드와 파리 등 유럽의 주요 도시에도 전염병이 확산해 우한과 비슷한 상황이 진행 중이다. 세계 경제의 중심이라는 미국 뉴욕주에는 현재까지 약 1만 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해 일상생활이 거의 마비됐다.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은 물론 도시 내 통행마저 제한되는 그야말로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도시 봉쇄'가 이뤄지고 있다. 세계 도시들을 촘촘하게 연결했던 국제 항공 노선은 이미 끊겼으며, 심지어 도시 내 생필품 사재기 등 패닉적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도시는 ‘이상적 사회’ 취급
하지만 전염병·재해 등 부정적 영향도

현재 세계 도시는 코로나19 분투 중
타 지역과의 연결과 개방, 모두 봉쇄

새 희망의 싹, 우리나라가 그 시작점
노하우 공유로 국제 간 협력 주도를

앞으로 이 사태는 어떻게 진행될까? 세계화 현실 속에서 각국의 도시 봉쇄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영화와 달리 치료제와 백신 개발이 불가능한 비극적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면?

이런 극단적 질문은 도시의 부정적 측면이 최대로 드러나는 암울한 도시의 미래로 일컬어지는 ‘디스토피아(dystopia)’를 떠올린다. 그리스어로 ‘나쁜 장소’를 일컬으며 이상적 도시 사회인 ‘유토피아(utopia)’의 반대어이다.

역사적으로 도시는 유토피아가 실현된 이상적 사회 또는 그러한 사회가 실현되는 곳으로 여겨졌다. 민주주의가 처음 실현된 고대 도시국가 아테네, 토목·건축의 화려한 기술적 문명을 보여준 로마, 상업적 교류를 통한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문화의 꽃을 피웠던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와 베네치아, 산업혁명을 배경으로 물질적 번영을 누린 런던과 뉴욕 등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도시’는 유토피아 그 자체였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도시의 부정적 이미지도 늘 함께 존재했다. 고대 도시 문명은 결국은 노예들의 비참한 노동을 바탕으로 건설된 이미지일 뿐이었다. 르네상스 이후 건설된 근현대의 도시 문명도 페스트, 콜레라 등 전염병에서부터 폭동과 소요, 자연재해의 집중 발생 등 계속되는 사회적 위기로 회색빛을 띠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대기와 수질 오염 등 환경 문제는 도시의 디스토피아적 이미지를 더 강화했다. 근대 도시는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상·하수도 정비, 공원 계획, 신도시 건설, 용도 지역제 도입과 도시 미화 운동과 같은 근대 도시계획 기법을 이용해 왔다.

인류의 화려한 도시 문명을 꽃피웠던 고대 아테네·로마 문명은 결국 외부 적의 침입에 의해 붕괴했다. 당시 도시는 외부의 적에게 노출된 위험한 지역이었고, 시민들은 그들을 지켜줄 기사와 성을 찾아 도시를 떠났다.

그렇게 지역 간 교류가 끊기며 문명이 한 발 후퇴한 디스토피아적 중세 봉건시대가 시작됐다. 현재는 코로나19라는 외부의 적이 세계 주요 대도시들을 공격하고 있고, 각국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도시 봉쇄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사람이 많이 모인 장소인 도시는 전염병 확산의 숙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전염병 확산이 계속돼 덩달아 도시 봉쇄가 지속된다면, 세계적 교류와 사회적 개방을 통해 이룩해 온 유토피아적 현대 도시 문명의 운명은 암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희망의 싹은 조금씩 나타나고 있고, 그 시작은 우리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도시 봉쇄가 아닌 지역 보건 역량을 활용한 끊임없는 전염병 진단 검사와 자가격리 관리, 역학 조사와 빅데이터 기반의 확진자 동선의 투명한 공개, 확진자에 대한 신속한 대응 등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엔 온라인 원격 수업, 재난기본소득 논의까지 위기에 대처하는 혁신적인 대응 방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전 세계가 우리를 주목하며 노하우(know-how) 공유 등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물론 부산시 등 지자체도 이러한 국제적 협조 요청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닫혀 가는 교류의 물꼬를 터야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사라마구는 자신의 책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재난 상황에서 유일한 희망은 인간 이성이며, 사람들 간 협력”이라고 말했다. 결국 디스토피아로 변해 가는 우리의 도시가 오래도록 꿈꿔 왔던 유토피아로 선회하도록 하는 힘은 소통과 공유일 것이다. 하여 눈먼 자들이 다시 눈 뜨게 된 도시처럼 전 세계 도시에서 코로나19의 종식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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