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찍으려다 민생당… 통합당 찾다가 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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헷갈리는 비례대표 투표

4·15 총선에 비례용 위성정당이 등장하면서 유권자들이 비례대표 정당 투표에 혼란을 겪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원들이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검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거대 양당이 자체 비례대표 후보 없이 비례용 위성정당을 내세운 채 치러지는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비례대표 투표에 혼란을 겪고 있다. 실제 지난 10~11일 사전투표에서 ‘지지 정당과 다른 칸에 기표했다’거나 ‘투표를 포기했다’는 등의 사례가 부지기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호 3번 민생당이 맨 위칸 위치
두 투표용지 정당 배열 서로 달라
사전투표서 유권자들 잇단 실수
“1번 5번” “이판사판 찍으세요”
민주·통합 위성정당 알리기 총력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투표용지는 지역구 1장, 비례대표 1장 등 2장이지만 두 투표용지의 정당 배열이 서로 다르다. 비례대표 선거에는 모두 35개 정당이 참여하고 있고, 용지 맨 위에는 1번이 아닌 ‘3번 민생당’으로 시작해 37번까지 이어진다. 이 때문에 유권자들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투표용지의 같은 위치에 있는 정당을 골랐던 기존 선거와는 다른 상황을 맞게 됐다.

여기에 비례대표 투표용지 길이만 48.1cm에 이르고, 당명이 유사한 경우도 꽤 있고, 과거 거대 정당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쓴 정당도 여러 개 있어 유권자 혼란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왔다.

실제 사전투표에서 혼란을 겪은 유권자가 상당히 많았다. 통합당 지지자로 부산 동구에서 사전투표에 참가한 주부 A(76) 씨는 지인으로부터 ‘2번과 4번을 찍으라’는 조언을 듣고 투표장을 찾았다. 그러나 막상 기표소에서 혼란이 와 지역구 투표는 ‘두 번째’, 비례대표 투표는 ‘네 번째’에 각각 기표를 하고 나왔다.

지역구 용지 두 번째는 미래통합당으로 A 씨 지지 정당이 맞지만 비례대표 용지에서 네 번째는 ‘정의당’이다. A 씨는 “정의당은 뭐하는 당인지도 모르는데…”라며 당황해했다.

A 씨 사례 말고도 ‘미래한국당’을 기억하지 못해 통합당을 찾다 기권하고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자 중에선 비례대표 투표 때 민생당에 기표했다는 유권자도 상당수 있다. 지역구 투표용지와 비례대표 투표용지 최상단에 각각 더불어민주당과 민생당이 나란히 배열돼 있는 탓이다. 남구의 민주당 지지자인 B 씨는 “비례대표 투표가 복잡하게 바뀐 줄 모르고 들어가 비례 용지에서 민주당을 찾다가 기표를 못하고 나왔다”고 말했다.

비례대표 투표용지 가장 윗칸을 차지한 민생당에 ‘어부지리 표’가 상당수 몰릴 것이라는 예측도 적지 않다. 민주당 지지자 표가 엉뚱한 정당으로 몰리게 되는 셈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민주당’이 안 보여 ‘민생당’ ‘열린민주당’을 찍고 나왔다”는 글들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민생당이 비례정당 의석 배분 기준인 3%를 넘길 것이라는 전문가 예측도 적지 않다. 민생당 측은 “내부적으로 첫 칸 배치와 무작위 배치 시나리오를 비교해 본 결과 지지율 차이가 꽤 나는 걸로 파악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정봉주 전 의원 등이 만든 열린민주당은 ‘기호 12번’으로 용지 중간 부분에 위치해 실제 선거에서 득표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런 혼란은 민주당과 통합당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민주당과 통합당은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후보자를 내지 않고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내세웠다. 이 때문에 비례대표 용지에는 정당 기호 1번과 2번인 민주당과 통합당이 아예 빠져 버렸다.

상황이 이렇자 민주당과 통합당은 비례대표 위성정당 이름 알리기에 힘을 쏟고 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지난 12일 충남 유세에서 “더불어민주당 비례 후보들을 더불어시민당에 참여시켰다”며 “더시민은 기호 5번이고, 투표용지에서 세 번째 칸이다. 혼선 생기지 않게 더시민 기호 5번 세 번째 칸”이라고 당부했다.

통합당 김종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도 같은 날 수원 유세에서 “투표용지에서 ‘더불어’와 ‘민주’만 빼고 투표하면 된다”며 “지역구 투표용지는 기호 2번(통합당) 찍으시고 팔 길이만 한 투표용지(비례)에는 꼭 두 번째 칸 미래한국당을 찍으라”고 호소했다.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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