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허공 / 한보경
아주 사소한 틈으로
틈을 뭉개려고
틈나는 대로 틈과 틈 사이에 낀
보이지 않는 틈을
들추고 후비고 파내었다
사소함은 자주 허기가 져서
틈이란 틈은 죽도록 뜯어 먹고 살았다
사소한 틈은
좀 더 사소한 틈들을 파먹고 더 사소하게 틈이 되어간다
지극히 사소하여
메울 수 없이 커다란 허공이 되어간다
-한보경 시집 중에서-
젊었을 때는 조그만 틈이라고 생각했는데 늙으니까 그 틈이 한정 없이 넓어져 정이라곤 털끝만큼도 없는기라. 나이 들어서도 부부싸움이 잦았던 시어머님은 곧잘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치를 떨었다. 자주 짐을 싸서 우리 집으로 들이닥치시니 나는 그 조그만 틈을 잘 관리해서 절대 저런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지 했다. 부부싸움은 늘 사소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큰일이 생기면 머리를 맞대고 합일이 되는데 사소한 것은 양보가 어려웠다. 그 사소한 틈을 메우려고 싸우고 또 싸우다가 아차! 하면서 정신을 차리다가 어느새 나도 그때 시어머니의 나이까지 와버렸다. 저 허공을 어쩌랴.
김종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