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행복을 찾아가는 아버지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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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영화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 스틸컷.
찬란 제공
함께 있는 게 어색해 보이는 부자(父子)가 있다. 너무 일찍 도착한 아버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아들, 그리고 어쩌면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아들까지. 칼 헌터 감독의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은 아버지와 아들의 행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감동적인 가족 드라마다.

아들은 왜인지 뚱해 보이고, 아버지는 대답 없는 아들에게 계속 말을 이어간다. 티격태격하는 그들이 어디를 함께 떠나는지 궁금해질 때쯤, 아버지는 아들에게 허락도 구하지 않고 허름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머물겠다고 선언한다. 계획에 없던 1박 여행에 아들은 화가 난다. 도대체 그들은 어디를 가겠다고 새벽부터 길을 나선 걸까? 아버지는 아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대신 다른 투숙객에게 보드게임을 하자고 제안한다. 마치 아들과 대화하는 것보다 모르는 사람과 말을 하는 게 더 익숙하기라도 한 듯 말이다.

부자 이야기 담은 가족 드라마 영화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

형 실종사건 이후 마음의 문 꼭 닫고
대화 대신 단어 게임에 빠진 아버지
서로 겉도는 부자 관계로 보이지만
알고 보니 온라인 게임 상대는 아들
유머와 위로로 깨달음 주는 행복론

그러고 보니 평생을 잊을 수 없는 그 날 밤에도 아버지는 보드게임 스크래블(Scrabble)을 즐겼었다. 이후 형 마이클은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남겨진 아버지는 온라인으로 혹은 모르는 누군가와 보드게임을 하는 것과 형을 찾는 것 말고는 다른 일에는 전혀 의욕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남겨진 아들 피터는 그런 아버지를 곁에서 바라보며 마냥 응석을 부릴 수 없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된 이유다.

드디어 몇십 년 만에 신원불명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오늘,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안치소로 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시체로라도 마이클이 돌아오기를 바랐을까? 아니면 돌아오지 않더라도 어딘가에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바랐을까?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감정 변화도 중요한 축이지만, 단어를 맞추는 스크래블 게임도 중요하게 살펴봐야 한다. 게임의 룰은 플레이어가 가로와 세로줄에 맞춰 글자를 조합하면서 점수를 얻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영화에서는 단순히 어려운 단어를 찾는다고 게임이 끝나지 않는다.

이때 앨런은 마이클이 실종되는 날 했던 게임 속 단어들에 어떤 단서들이 숨어 있다고 굳게 믿고 있기에 열정적으로 단어를 공부하고 누구와도 게임을 즐긴다. 그로 인해 피터와 잦은 불화를 겪게 되었지만 말이다. 피터는 그토록 게임이 싫다고 말했지만, 익명의 세계인 온라인에서 아버지와 자주 만나서 게임을 즐기며 그를 위로해왔던 성숙한 아들이었음이 곧 밝혀진다. 두 사람에게 게임은 놀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던 것이다.

앨런은 세상의 모든 단어의 의미를 찾아야만 잃어버린 아들을 만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피터와 대화를 통해 아픔을 헤쳐 나가는 또 다른 법을 찾는다. 물론 앨런이 한순간 변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는 내일 또 마이클을 찾는 전단지를 들고 밖으로 나갈 수 있으며 보드게임에 열중할지 모른다. 다만 행복의 단추를 ‘완벽’하게 채우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달리 말해 영화는 단추 한 두어 개쯤 느슨하게 풀어두는 것도 괜찮다고, 행복은 사라진 마이클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가족에게서 만날 수 있음을 알린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잊을 수 없다면,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족이 곁에 있다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냐고 등을 두드려 준다. 어쩐지 위로를 받는 것 같으면서도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고, 또 그러다 영국 영화 특유의 유머로 웃음이 터지고 만다. 조금은 우울한 이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영화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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