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가을 마스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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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에 공을 빠뜨린 바비. 수차례 샷에도 탈출에 실패한다. 분을 못 이겨 씩씩대는 바비에게 캐디가 “미친 짓의 정의를 아느냐”고 묻는다. 바비는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표정. 캐디가 말한다. “같은 행위를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바라는 게 미친 짓이야.” 영화 ‘바비 존스-스트로크 오브 지니어스’의 한 장면이다.

바비 존스(1902-1971)는 타고난 허약 체질에 성질마저 고약했지만, 스스로를 다스리면서 골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는 1930년 한 해에 4개 메이저 대회를 싹쓸이할 정도로 엄청난 선수가 됐다.

하지만 존스의 위대함은 그런 대기록 때문만은 아니었다. 1925년 US오픈 마지막 라운드, 1타차 선두로 달리던 존스가 러프에 공을 떨어뜨렸다. 그런데 어드레스하는 사이 볼이 살짝 움직였다. 목격자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진 신고해 벌타를 받았고, 결국 우승을 놓쳤다. 골프에서 우승보다 귀한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준 것이다. 28세의 나이로 은퇴했지만, 그는 지금도 ‘20세기 최고의 골퍼’로 추앙받는다.

존스가 1934년 창설한 미국프로골프 대회가 마스터스 토너먼트다. 골프 선수라면 한 번의 참가라도 평생의 영광으로 여기는 현존 최고 골프 대회다. 이 대회에서 많은 스타가 배출됐지만, 그 중 독보적인 존재가 타이거 우즈다. 21살이던 1997년 대회에서 우즈는 2위와 무려 12타차로 우승하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였다. 우즈는 또 ‘골퍼는 백인, 캐디는 흑인’이라는 마스터스의 노골적 인종 차별을 무참히 깨트리고, 우승자에게 주는 그린재킷을 처음 입은 흑인이 됐다.

우즈는 2005년까지 4번이나 그린재킷을 입었으나 이후에는 입지 못했다. 근래에는 “한물갔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하지만 절치부심 끝에 지난해 우승함으로써 기적 같이 부활했다. 지난해 우즈의 우승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라이벌 필 미컬슨도 우즈를 진정으로 축하했다. 이는 지난 14일 마스터스 조직위원회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미컬슨이 쓴 축하 편지를 공개함으로써 알려졌다.

그렇게 많은 사연을 가진 마스터스가 올해는 가을에 열린다. 해마다 꽃피는 봄, 4월에 열렸는데 코로나19 때문에 11월로 연기됐다. 그래도 또다른 메이저 대회인 디오픈처럼 대회가 취소되지는 않았으니 다행이다. 부디 코로나19 사태가 이른 시일 안에 종식돼 가을 마스터스라도 제대로 볼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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