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4·15, 4·16,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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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를 입증하듯 투표장 풍경도 달랐다.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열도 쟀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이 되었음에도 투표장을 향하는 시민의 발길은 오히려 늘었다. 28년 만에 총선 최고 투표율이었다. 체감 경기 악화와 기득권층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고전하던 여당은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치러진 4·15 총선에서 압승했다. 세계가 주목하는 방역 모범국가의 운전대를 더 확실히 잡으라고 국정에 힘을 실어준 유권자의 선택이다. 반면 지역사회 감염의 진앙이었던 대구·경북, 전통산업 쇠퇴와 높은 자영업 비율로 삶이 팍팍해진 부산·울산·경남의 선택은 냉엄했다.

이런 총선 성적을 언급할 만도 한 16일 아침 문재인 대통령은 SNS에서 세월호 6주기를 먼저 기억했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와 대책 속에 세월호의 교훈이 담겼다”며 “사회적 책임을 유산으로 남겨준 아이들을 기억하며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되새긴다”고 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2년 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져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던 시민들은 기성세대로서의 죄책감에 응어리졌다. 탄핵을 거치며 정치적 각성에 이른 국민의 선택은 문재인 정부 출범과 2018 지방선거, 그리고 이번 21대 총선까지 4년 동안 3차례 선거에서 일관된 흐름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오는 19일엔 4·19 혁명 60주년을 맞는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 항의 시위에 동참했던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이 최루탄에 맞아 숨진 채 싸늘한 시신으로 바다에 떠오른 지 일주일 뒤 국민들이 총궐기해 대통령을 하야시켰다. 아시아 최초 시민혁명으로 추앙받는 4·19는 1979년 부마항쟁,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 그리고 2016년 촛불혁명의 뿌리다.

피어나지도 못하고 수장된 김주열 열사와 세월호 아이들의 희생에 빚진 채 한국 사회는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6년이 지났는데도 밝혀지지 않았다. 5월 30일 출범하는 21대 국회가 진상을 제대로 규명해 유족은 물론 국민의 응어리를 풀어야 할 것이다. 비록 많은 일상이 바뀌고, 더 큰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해 내는 시민들은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이겨 낼 것이다. 억울한 희생 없이도 한 걸음씩 진보해 나갈 것이다.

이호진 해양수산부장 j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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