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포스트 코로나 정치, 민심은 새 틀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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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무섭고 두려운 민심이었다. 21대 국회의원을 뽑는 4·15 총선 결과는 냉혹했다. 민심은 국회 전체의석(300석)의 5분의 3에 해당하는 180석을 여당에 몰아주었다. 더불어민주당과 비례정당 더불어시민당이 개헌 빼고는 모든 일을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180석을 확보한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전례 없는 여당의 압승이다. 반면 부산·울산·경남(PK)에서는 전체 40석 가운데 32석을 야당인 미래통합당이 석권했다. 20대 총선 당시의 27석에서 6석을 늘리는 완승을 거두면서 PK는 ‘보수의 섬’으로 회귀했다. 부·울·경과 전국의 민심은 서로 만나지 못하는 운명의 철길처럼 그렇게 엇갈렸다.

“민심은 천심”이라 했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지금은 민심 앞에 겸허해야 할 시간이다. 왜 민심은 집권여당에 압도적인 승리를 안겨주었는지, PK는 전국의 민심과는 달리 이런 집권여당에게서 등을 돌렸는지 냉정하게 분석할 일이다. 민심을 돌아보지 않고 아전인수 격으로 섣부른 한탄과 신세타령만 늘어놓는다면 더는 정치의 미래가 없다. 정치의 시간표는 이제 2022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2022년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여당이 20대 총선 이후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 이르기까지 전국 단위 선거에서 내리 4연승을 거둔 마당이다.

여당, 전국에서 전례 없는 180석 압승
부산·울산·경남에서는 야당 완승 거둬
투표함 열자 냉혹한 정치 지형 드러나

요동치는 PK 민심 제대로 읽고
국난 극복에도 힘 모으는 노력 필요
정치 개혁의 새 틀과 체계 나와야 할 때


정부·여당에 대한 부·울·경의 민심 이반은 사뭇 극적이었다. 특히 부산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형국이다. 지난 지방선거 때 민주당이 부산에서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를 석권했는데 불과 2년 만에 국회의원 의석을 모두 내줄 뻔했다. 부산 18석 가운데 지난 총선 때의 6석을 지키지 못하고 3석을 방어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도 선거 다음 날 새벽까지 엎치락뒤치락한 끝에 3석의 승리도 신승 중의 신승이었다. 이런 가운데 부산의 유력 대권주자가 낙마한 것도 지역으로서는 손실이다.

문재인 현 대통령을 배출한 부산에서 민심이 이렇게 요동치고 있다는 점은 집권여당에게는 부끄러운 일이다. 민심이 이토록 멀어지고 있는 동안 여권에서는 과연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보고 또 돌아볼 일이다. 동남권 신공항, 부·울·경 메가시티, 광역교통망 구축 등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다는 게 지역의 중론이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전국 단위 선거 5연승으로 가는 길이 PK에서 급제동 걸릴 수도 있다.

부·울·경에서 완승을 거둔 미래통합당이 자만할 일도 아니다. 부산의 경우 이번 총선을 통해 물갈이가 대폭 이뤄지면서 낡은 보수의 이미지가 완화되었지만 대권주자 등 지역을 대표할 만한 인물이 나와야 여론의 힘을 결집할 수 있다. 정부·여당은 물론이고 부산의 자치단체와 지방의회를 이끄는 민주당 쪽과 협력해 지역발전을 견인하는 일도 중요하다. 지역은 나 몰라라 하고 서울에서 권력 싸움에만 골몰한다면 또다시 물갈이 대상에 오르는 등 지역민의 심판을 면할 수 없다.

한때 기세를 올리던 ‘정권 심판론’ ‘야당 심판론’이라는 케케묵은 구도는 ‘국난 극복’과 ‘국회 심판론’이라는 민심에 밀려 총선 막판에 가서는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 막말과 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 정쟁으로 날이 새고 지는 ‘동물국회’ ‘식물국회’라는 구태 정치에 대해 무서운 심판이 내려진 것은 물갈이, 판 갈이라는 말을 떠올릴 정도로 21대 국회의원 당선인들의 면면이 달라졌다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정치 개혁의 일상화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국회의 과제가 되었다.

총선이 끝나고 난 뒤에야 고백하는 말이지만 각 당의 공약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끈 것은 비례정당 열린민주당의 ‘12공약’이었다. 기호 12번과 ‘ 깔맞춤’으로 내놓은 12공약은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국회의원 3선 제한법 제정, 국회의원 비례대표 국민참여경선 의무화 등으로 시작된다. 사상 최악의 국회라는 20대 국회 심판론이 중심을 이룬 이들 공약에서는 지방자치선거와는 달리 왜 국회만 국민소환제와 3선 제한에서 자유로운지를 심각하게 되묻고 있다.

세상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최근 들어 회자하고 있다. 예상하지 못한 민심의 대폭발이 일어난 이번 총선을 보더라도 정치마저 이제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 시대로 접어든 인상이다. 당리당략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를 중심에 놓는 새 정치의 패러다임이 필요한 때다. 21대 국회는 20대 국회의 나쁜 관행을 청산하면서 달라진 시대에 걸맞은 새 정치의 틀과 체계를 선보여야 한다. 여와 야가 머리를 맞대고 대한민국 정치 지형에서 유령처럼 다시 등장한 ‘좌-파란색, 우-분홍색’의 지역주의와 양강 구도부터 먼저 타파하고 상생과 협치의 정치를 열어나가기를 기대한다. 그렇지 않다면 무섭고 두려운 민심은 언제든 다시 정치를 뒤집어 놓을 것이다.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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