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디토리움의 명반시대] 16. 밴드 ‘The 1975’의 ‘Notes On a Conditional 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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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밴드 음악을 무척 좋아합니다. 비틀스 이후에 등장한 밴드 중 저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밴드는 라디오헤드였습니다. 록 그룹이 유행하던 시절, 라디오헤드는 유행에 안주하지 않고 독특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끊임없는 음악에 대한 성찰로 점차 진화해 갑니다. 음악 내적으로나 음악 산업을 선도함에 있어서도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행보를 남긴 밴드로 자리 잡았지요.

콜드플레이의 등장은 또 하나의 충격이었습니다. 이들은 ‘라디오헤드’와는 다른 방향을 걷습니다. 록밴드인데도 시대의 유행하는 팝 장르를 과감히 그들의 음악으로 전부 끌어들입니다. 음악뿐 아니라 공연도 시대의 유행과 테크놀로지 그리고 미술을 전부 흡수하지요. 이들이 대중음악 차트에서 크게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록의 전형이라고 생각했던 변할 수 없는 음악의 장르적 근원을 해체하며 음악을 만들어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디오헤드’와 ‘콜드플레이’ 둘 다 서로 전혀 다른 양쪽 지점에서 밴드 음악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지요. 그리고 그 후 저는 이제 정말 이 밴드들 이후 더 위대한 밴드는 또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다시 장담했지요. 그런데 이 두 다른 지점의 장점을 함께 갖춘 밴드가 이제 막 세상에 등장할 준비를 하며 저의 이런 장담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바로 밴드 ‘The 1975’입니다. 이미 국내에서도 대중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밴드이기에 무슨 이야기냐고 반문하시는 분도 있으실 텐데요. 곧 발매를 앞둔 이들의 신작 ‘Notes On a Conditional Form’은 작년부터 첫 트랙을 공개하며 한 곡씩 대중들에게 이들의 이전과 전혀 달라진 음악을 선보입니다.

이 앨범은 환경과 인간에 관한 내레이션을 들려주는 동명곡 ‘The 1975’로 시작하죠. ‘메릴린 맨슨’의 음악만큼 파격적인 펑크 ‘People’, 드럼엔 베이스 장르를 연상시키는 ‘Frail State of Mind’, 포크 장르 ‘Jesus Christ 2005 God Bless America’ 등 기존 The 1975의 팬들이라면 ‘이 음악이 정말 그들의 음악이라고?’ 반문할 만큼 기존의 음악과 전혀 다릅니다. 그리고 단순히 한 밴드의 큰 음악적 변화라고 하기에는 그 스펙트럼과 음악적 아이디어의 양이 너무 방대합니다.

이들의 음악이 한 곡씩 공개될 때마다 영화의 트레일러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지요. 음악을 듣고 있으면 현대미술관에서 현재 가장 주목받는 작가의 전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세련미와 밴드 음악의 미래를 보여 주려는 큰 열망이 응축돼 있다고 할까요. 수록 트랙 하나하나가 결합하며 지금껏 등장하지 않았던 작가의 설치미술을 감상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합니다. 곧 이 전시관을 나오며 새 영감의 환희를 느껴보고 싶은 순간이 몹시 고대 됩니다.

김정범 성신여대 현대실용음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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