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비평은 미술판 지배하는 전체주의에 저항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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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학 비평선집 ‘저항의 피아니시모’

“작가의 수만큼이나 작품 세계도 다 다르다. 작가의 작품을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고 그래야 세계를 보는 폭이 넓어질 수 있다.”

미술 평론가 강선학(사진)은 자신을 ‘현장 비평가’라고 불렀다. “현장에서 만나는 작품을 통해 비평하는 사람이다. 특정 입장을 갖고 보면 현장을 못 본다. 미술사나 미학을 전공한 비평가들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1984년 계간지 <예술계>로 등단한 이후 지금까지 펴낸 평론집은 모두 14권이다. 책 내용 대부분이 현장 비평이고 90% 이상이 작가론과 전시평으로 구성돼 있다.


36년 평론 작업 결산해 863쪽에 담아
부산·한국·세계미술의 상업성 반성
비평은 작가조차 몰랐던 사유 끌어내기
다음 작업은 부산형상미술 관한 선집 


“주변에서 책을 많이 내는 것도 좋은데, 너는 평론가로 어떤 이론적인 바탕을 가지고 있느냐고 묻더라. 지금까지 쓴 책에서 나를 내놓을 만한 관점으로 보일 글을 추려 봤다.” 강 평론가도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지난달 미술 평론 앤솔로지 <저항의 피아니시모>(뮤트스튜디오)가 세상에 나왔다.

강선학의 36년 평론을 결산한 이 선집은 2019년 <불의 우울>부터 1989년 <형상과 사유>까지 기존 평론집을 역순으로 접근해 간다. 책에는 부산 작가 5명, 대구 작가 2명에 대한 비평이 등장한다. 강 평론가는 “내 생각의 갈래 전체를 보여 줄 수 있어서 뽑은 글”이라며 선집을 통해 작가 서열화가 부각되는 것을 경계했다. 책 안에 작품을 싣지 않은 이유도 여기 있다.

‘세계 미술/한국 미술, 중앙 미술/지방 미술, 유명 작가/여느 작가의 차이가 차별로 상품화된다.’(불의 우울) ‘현대 미술의 미학은 현대 사회의 부르주아지의 상품과 무관하지 않다.’(불만의 통속성) ‘눈앞의 이윤에 유달리 집착하는 이 시대에 그림의 향수 혹은 감상은 재화의 간접적 표현 혹은 과시와 다르지 않다.’(은유의 도시) 총 863쪽에 이르는 선집에서 강 평론가는 ‘부산 미술, 한국 미술, 세계 미술의 후기 자본주의 세태에 대한 반성’에 있어 단호한 태도를 드러낸다.

강 평론가는 “예술은 사유의 형태이고 어떤 사유를 보여 주느냐가 미술관의 중요 역할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 몇 명이 왔느냐고 묻고 그걸로 미술관을 평가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상업적 세력에 의해 철저하게 팔릴 것만 부각되는 큰 흐름 속에서 ‘예술가는 힘이 없다’는 사실을 그도 알고 있다. “누군가 신문에 실린 기사의 한 구절에 분노하고 그것이 추동의 힘이 되는 것과 같이, 예술의 저항이 여리고 간단없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강 평론가는 자신의 글쓰기가 미술판을 이끄는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일이 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꽃을 그려도 작가마다 꽃을 매개로 이야기하는 것은 다 다르다. 비평은 그 꽃 그림을 통해 평소 느끼지 못한 사유의 지점까지, 때로는 작가마저 몰랐던 사유까지 사람을 이끌고 가야 한다. 강 평론가는 “새로운 사유의 지점을 가진 그림이 낯설 듯, 비평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도 평소 우리가 못 보던 지점에 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술을 본다는 것은 개념화된 일상에서 개념화되지 못한 순간을 만나는 일이다.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던 것과 만나는 일을 그냥 즐기면 된다. 강 평론가는 “예술 감상에 있어서 어떤 것이 옳고 그르고가 없다. 작품을 봤을 때 느낌을 귀중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작품을 보고 궁금증이 남을 때 “비평을 읽으면 예술을 통해 접하는 사유의 확장에 도움이 된다”는 조언이다.

강 평론가는 다음엔 ‘부산 형상 미술’에 관한 선집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현대 미술사에서 부산 미술의 자리가 없다. 6·25 동란 피난 시절의 미술에 대한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모아 보니 1000페이지가 넘겠더라.” 부산 미술의 자리매김에 하나의 계기를 만들어 보고 싶은 미술 평론가의 결의다.

글·사진=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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