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코로나19와 4·15총선의 나비 효과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김수진 사회부장

어릴 적 초등학교에 다닐 때다. 인도를 걸을 때 보도블록 선을 밟지 않기 위해 오른쪽 왼쪽으로 깡충깡충 뛰었다.

길을 가던 한 어른이 핀잔을 주듯 물었다. “선을 밟기라도 하면 누가 죽냐?”

그랬다. 선을 밟으면 모르는 곳에 사는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온 힘을 다해 선을 밟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나중 ‘나비 효과’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브라질에서의 한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 사실 초기의 미묘한 움직임이 후기에 큰 혼돈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모든 것이 서로 영향을 주며 이어져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때 속으로 소리쳤다. ‘그것 봐 내 생각이 맞잖아.’

가덕도신공항 건설 등 약속 외면
정부 코로나 초기 대응 미흡 등
정권 악재, 코로나19에 모두 사멸
여당, PK 지역 제외하고 압승 거둬
모여 연호하는 선거사무실에 ‘깜놀’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연결 막아야

4·15 총선이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여당은 서울 경기 수도권과 충청, 전라, 제주에서 압승했다. 야당은 경상도에서 의석수를 조금 늘리는 데 그쳤고, 강원을 제외한 전국에서 참혹하게 패했다.

투표 전 여당이 승리를 하지만, 과반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우선 한국 사회 주력이 산업화 세력에서 민주화 세력으로 바뀌었다. 큰 사회적 변화가 없다면 진보가 투표에서 앞설 여건이 갖춰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응, 정부가 한 게 뭐 있나. 메르스 때문에 얻어걸린 거지’라는 주변의 여론이 있었다. 정부가 초반 코로나 대응에 실패했지만,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만들어진 긴급의료체계가 그나마 코로나 확산 차단에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여기에 PK 지역의 정부를 향한 반감이 결정적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의원 5명만 만들어주면 가덕도 신공항 만들어준다고 했는데, 이후 모른 척한다.’ 4·15 총선 막바지에 이낙연 여당 상임선대위원장이 부산에 내려와 다시 만들어 준다고 했다. ‘이번엔 과연 지킬까.’

돈으로 표를 사려고 한다는 비난도 있었다. ‘부산시 관광·마이스 등 지역 산업 육성자금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준단다.’ ‘밑돌 빼서 윗돌 괸다 더니, 정부가 무너지는 부산 경제에 과연 관심이 있기는 있나.’

이 같은 PK 지역의 반감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쳤다. 야당이 PK지역에서 작은 승리를 거뒀을 뿐이다. PK 지역의 반감뿐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모든 이슈가 코로나19에 의해 사멸됐다. 총선 뒤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65%가 ‘코로나19 대응으로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한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18일 트럼트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에서 “코로나19 사정 호전이 총선 승리에 큰 도움이 됐다”고 언급했다.

사실상 코로나19가 4·15총선을 결정지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16일 오전 1시 부산의 한 총선 후보 사무실에는 ‘와’하는 환호가 일시에 터져 나왔다. 승리를 확인하는 지지자들의 함성이었다. 투표일인 15일 개표 이후 엎치락뒤치락하다 밤 12시 이후 상대 후보에게 밀리다 16일 오전 1시를 넘겨 승리를 확정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개표였다.

승리 이후 좁은 사무실에 모인 수백 명의 사람은 서로 끌어안았고, 당선인의 이름을 연호했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함을 질렀고, 승리에 취해 그 소리는 점점 커졌다. 상당수는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 촘촘히 모여있던 그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였다.

방역 당국은 선거 당일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1m 띄워 줄서기, 투표 때 마스크 쓰기와 비닐장갑 끼기 등을 실시했지만, 전국 수백 곳의 총선 후보 사무실에는 코로나19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듯한 장면들이 연출된 것이다. 이런 장면에 대한 방역 당국이나 선관위의 가이드라인이나 지침은 전혀 없었다.

19일 부산에서 지역 감염이 26일 만에 발생했다. 50대 확진자는 12일 부활절 예배에 다녀왔다. 이 교회가 부산의 새로운 코로나19 감염원이 되지 않을까, 방역 당국이 우려한다. 상당수 자영업자는 ‘병에 걸려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매한가지’라며 지난주부터 정상 영업에 들어갔고, 장기간 사회적 거리두기에 지친 시민들은 지난 주말 거리로, 산으로, 들로 쏟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저버리고 모여 비말을 서로 흩날리며 목이 터지라 소리를 외친 선거사무실이 자칫 큰 돌풍을 예고하는 나비의 움직임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마치 어릴 때 보도블록의 선을 밟은 듯 불안하다. 이런 불안이 기우에 그치길 간절히 기대한다. ‘그것 봐. 네 생각이 틀렸어’라는 핀잔을 듣더라도 말이다. kscii@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