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다가서기’로 마음 면역력 기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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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정신건강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선별진료소를 찾은 한 시민이 의료진의 안내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A 씨는 집안 식구들과 식사하는 도중 시누이가 기침하면서 침방울이 자신에게 튀는 일이 있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뉴스를 보는데 문득 목이 간질간질하면서 기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계속 물을 마셔도 이물감이 없어지지 않자 코로나19에 걸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극도의 공포감이 엄습했다. “이러다간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급히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B 씨는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에 감염돼 사망한 시신들을 실어나르는 뉴스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자신도 재수가 없으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불안한 마음에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다음날에도 불안감이 계속됐고 지인들의 연락조차 피했다. 남편은 “저러다 말겠지” 생각했지만 증상이 계속되고 식사도 거부하자 부인을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계속되면서 정신적 심리적 불안지수가 높아지고 있다. 외출 자제로 대면접촉이 끊기면서 우울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다.


코로나 공포·사회적 거리 두기 지속
5명 중 1명 심한 우울·불안감 호소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스트레스
면역력 낮춰 질병 저항력 떨어뜨려

‘마보’ 등 명상 앱·온라인 의사소통
코로나로 인한 불안감 해소에 ‘유효’



■고립으로 인해 우울, 불안감 증가

지난 10일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코로나19에 대비하는 정신건강 관련 주요 이슈 및 향후 대책’이라는 제목으로 포럼을 개최했다. 때가 때인 만큼 포럼 역시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현진희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회장은 최근 상황과 관련해 “코로나19로 인한 일반 대중들의 불안 수준은 정상적인 수준이지만, 전체의 19%는 중증도(중간보다도 심한) 이상의 불안을 표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런 현상은 중국 후베이 사범학교 학생 121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났다. 응답자 중 16.5%가 중등도(경도나 고도가 아닌 중간) 이상의 우울감을, 28.8%가 중등도 이상의 불안감을 호소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회식이나 모임 자체가 없어졌다. 이로 인해 ‘권태롭고 따분하다’, ‘기운이 없고 우울하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들은 대개 기분이 약간 가라앉거나 불안감이 조금 드는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5명 중에서 1명은 정상 수준 이상의 우울감과 불안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태 여파로 많은 이들이 자가 격리를 경험하고 있다. 확진자 또는 의심자라는 이유로 격리를 경험하는 경우도 있고 그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자발적 격리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격리는 사람의 심리 상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최근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사망률은 비만이나 환경오염, 흡연으로 인한 사망률에 비길 정도로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인체 면역력을 낮추고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이런 문제는 비단 신체적 질환뿐 아니라 정신질환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지난 메르스 사태 당시 서울대병원 등의 공동연구팀이 메르스 생존자 63명을 1년 동안 관찰한 결과, 63.5%가 외상후 스트레스 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양산부산대병원 이태영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실제 확진자가 아니고 단순히 감염 우려 때문에 격리를 경험한 경우에도 당시에만 힘든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영향을 준다. 문제는 위험 요인이 있을 땐 예후가 좋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고 지적했다.

기존에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경험하고 있던 이들은 다른 건강한 이들에 비해서 더 많은 불안과 공포를 경험한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불면도 증가한다. 심리적으로 취약한 이들은 남들이 경험하는 일상적 불안이 더욱 크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들어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우려와 불안을 이유로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이 부쩍 늘었다. 이럴수록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취미생활을 즐기고, 운동하면서 스트레스를 털어내야 한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심리적 거리 좁히기가 막혀 출구를 못 찾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접속 늘려 거리 좁히기

코로나19 사태에서 제한적이기는 하나 온라인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예가 눈에 띈다. 해외에서 불안을 진정시키는데 활용하는 앱으로 헤드스페이스(Headspace), 샤인(Shine), 캄(Calm), 올멘탈헬스(All Mental Health) 등이 소개되고 있다. 국내에도 ‘마보’라는 명상 앱이 출시돼 인기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보다 단순하고 직접적인 것이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중국 상하이아동병원 연구팀은 웨이보, 위챗 등을 이용해 평소 관리하던 2002명 산모에게 의학 정보를 제공, 코로나로 인한 불안감을 해소했다고 한다. 또 중국 수도의과대학 연구팀들은 환자들과 메일 교환을 통해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심리적 위안을 준다는 것을 확인했다. 밀접 접촉이 어려운 시점에서 온라인을 통한 의사소통이 심리적인 도움을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지속되면서 장기입원 중인 환자, 가족과 떨어져서 홀로 거주하는 노년층, 또는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이 받는 심리적인 타격은 아주 크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한 허전함과 공백을 메우기 위한 대안으로 메신저나 영상통화 등을 통한 심리적 다가서기는 아주 유효한 소통법이라고 할 수 있다.

양산부산대병원 이태영 교수는 “작은 관심과 따뜻한 말 한마디가 불필요한 걱정을 잠재우고 불안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조되는 한편으로 우리들의 심리적 거리는 더 가까워져야만 한다. 그게 바로 코로나19 시대의 사랑법일 것이다”고 조언했다. 김병군 선임기자 gun39@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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