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담금 협상에 볼모… 거리 내몰린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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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코로나19 탓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한·미 양국 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말 그대로 ‘무급휴직’에 돌입한 주한미군 소속 한국인 노동자들이 생계난을 호소하고 있다.

전국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에 따르면 주한미군 내 한국인 노동자 1만 2500여 명 중 4000여 명이 이달 1일부터 사상 첫 무급휴직에 들어갔다. 부산의 경우 부산항 8부두, 미55보급창 등지에 근무하는 인력 중 필수인력을 제외한 190여 명이 무급휴직 중이다. 당장 일터에서 쫓겨난 이들은 생계가 막막한 상황이다.

부산서도 190여 명 무급휴직
노동법 보호 못 받아 생계 막막

문제는 미국 정부가 현재 분담금의 5배가 넘어가는 무리한 금액을 요구하고 있어 협상에 타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점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양국의 실무 협상팀이 도출한 협상안마저 거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터로 복귀할 시점은 오리무중이다. 일각에서는 미국 대선이 열리는 11월까지 무급휴직이 이어질 거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주한미군 감축설까지 돌고 있어 이들 노동자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사실상 미국이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의 고용을 볼모로 무리한 협상을 요구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는 현행법상 구제받을 길이 없다. 사업주가 미국 대통령인 데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 노무 조항에 따라 한국 노동법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 노동법에는 사용자가 강제휴업을 하면 휴업 수당을 지급해야 하지만 주한미군에는 이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주한미군한국인노조 조합원 사이에서 “코로나19로 인한 무급휴직은 국가 지원금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우리는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어 아무런 지원도 받을 수가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전국주한미군한국인노조는 매일 미국 대사관 앞에서 무급휴직 철회와 방위비 분담금 협상 타결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벌이고 있다. 부산지부도 매주 수요일 오전 미 55보급창 정문 앞에서 집회를 열며 정상화를 외치고 있다.

국방부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결렬되더라도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특별법 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다. 이영찬 전국주한미군한국인노조 부산지부장은 “매번 방위비 분담금에서 협상의 볼모로 잡히는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의 고통이 해결될 수 있도록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 현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끝나는 5월 말 이전에 특별법이 통과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서유리 기자 y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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