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미혜의 젠더렌즈] 우리는 ‘저출생’을 극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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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대 보건복지대 학장

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저출생’ 문제도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4월이 가기 전에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그런데 ‘저출산’이 아니고 ‘저출생’이라고 표시한 것을 눈치챘는지. 저출산이라고 표시하면 출산을 하는 여성의 책임과 의무에 방점을 찍기 쉽다. 따라서 여성계는 여성이 아이 낳는 도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저출생으로 재명명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저출생의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20년 넘게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거론되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180조 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럴듯한 해결책이 없다는 점에서 갑갑하기만 하다. 외국의 한 인구문제연구소는 가장 먼저 소멸될 국가로 한국을 지목했다고 한다. 그만큼 저출생과 고령화가 전 세계에서 가장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서 저출생 가장 급속하게 진행돼
정치·경제 분야 여성 기회 불균등 심각
사회적 변화 반영하는 정책 구성 시급

저출생의 원인은 경제 상황, 사회문화, 가족제도, 가치관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다면적인 형태를 보인다. 우선 경제적으로는 괜찮은 일자리의 부족, 양육 비용의 증가, 주거 비용의 증가 등이 있으며, 사회문화적으로는 아직도 여성에게 전담되고 있는 돌봄 노동에 대한 인식이 그 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독박 육아’를 할 수밖에 없는 가족의 형태가 일상화되고 있고, 둘째 이상의 출생아에게만 혜택을 주는 지원책 등은 이제 젊은 부부들에게도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청년들의 결혼에 대한 가치관도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현재 이들에게 ‘취업은 필수, 결혼은 선택’이 된 지 오래다.

한 사회과학자는 일과 가정의 영역에서 어느 정도 성 평등을 이룩한 국가의 경우 여성의 고용률이 증가하면 일시적으로 출생률이 감소하지만 어느 수준(약 60%)이 되면 다시 출생률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 고용률은 아직 이에 못 미치는 52.9%에 불과하다.

작년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경력 단절 여성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OECD 통계에서 2018년의 30~40대 여성 고용률을 국가별로 추출해 비교한 결과, 한국의 경우는 65.1%로 13개 국가 중 최하위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나라 여성의 30~40대 고용률을 살펴보면 출산과 양육에 의한 경력 단절을 의미하는 ‘M자’ 형태가 보인다. 이 ‘M자’는 희한하게도 우리나라 외에도 일본이나 대만 등과 같이 유교 중심의 아시아 국가에서만 나타난다. 반면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와 같은 복지 국가에서는 30~40대 여성 고용률이 ‘∩자’ 형태를 보이고 있다. 네덜란드와 독일은 지난 30년간 ‘M자’ 형태였으나 최근 들어 ‘∩자’ 형태로 변화했는데 여기에는 여성의 시간제 일자리 확대 외에도 성별 임금격차 해소, 비정규직의 권리 강화 제도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 실질적인 성별 격차를 나타내는 ‘성 격차 지수(gender gap index)’를 보면 총 153개 국가 중 우리나라는 108위에 위치하고 있어 여전히 하위층에 속한다. 우리나라는 높은 교육열 덕분에 여성의 교육 수준이 매우 높다. 그러나 경제활동 참여율과 평균임금에서 성별 격차가 심하고 여성 관리직과 임원의 비율이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는 전반적인 사회 발전을 달성했지만 정치·경제적인 분야에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기회와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04년 영국은 동성 커플에게 법적, 재정적 지원을 하는 ‘시빌 파트너십(civil partnership)’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최근 들어 저출생과 고령화, 동거 가족의 증가가 빠르게 진행되자 영국 정부는 작년부터 이성 커플에게도 시빌 파트너십을 적용하여 결혼이나 동거에 구분 없이 출산 및 양육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비혼모(결혼하지 않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일 경우에는 주택 임대료와 보육원 비용까지 지원받게 되어 훨씬 많은 혜택을 받게 된다고 한다.

경제적인 상황만이 저출생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면 가장 시급한 것은 변화하는 가족 형태와 의식 구조를 반영하는 포괄적인 정책을 구성하는 것이다. 분명 단시간에 긍정적인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다만 빠른 변화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따라 그 시간이 단축될 수도 연장될 수도 있다. 이는 정책의 방향을 어디에 두는가와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그 성패와도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사태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우리 한국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능력을 발휘하여 전 세계에서 의료 선진국으로 부상하지 않았는가. 여기에 다시 한번 기대를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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