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코로나 위기 빌미 ‘이민 중단’ 폭탄선언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21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백악관 앞에서 전국간호사노조 소속 간호사들이 코로나19 대응의 최전선에서 일하다 감염돼 사망한 동료 의료진들의 얼굴 사진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에 따라 2m가량 떨어져 선 이들은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 의료진의 보호장비가 부족한 상황을 조속히 개선하라고 항의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는 미국 의료진 9000명 이상이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밝힌 바 있다. UPI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산 차단 등을 명분으로 ‘이민 일시중단’ 카드를 뽑아 든 것을 두고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이번 행정명령이 영주권 발급 희망자를 주요 대상으로 하는 만큼 당장 전 세계 각국에서 관련 절차를 진행 중이던 이민 준비자들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심야 트윗에 워싱턴 정가 발칵
주무 부처도 제대로 인지 못 해
지지층 결집 ‘코로나 위기’ 이용
야당·정치단체 ‘독재자’ 맹비난
“생명보다 반이민 화염에 관심”


취임 이후 반(反)이민 드라이브를 걸어 온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국면에서 다시 한번 ‘국가 봉쇄’의 기치를 재확인하면서 대선 국면 지지층 결집을 위해 코로나19 위기를 이용한 것 아니냐는 역풍이 거세다. 특히 이번 발표는 국토안보부 등 주무 부처 당국자들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충분한 준비 없이 발표됐다는 미 언론 보도도 나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21일(현지시간) 행정부 고위 당국자들과 변호인들이 이날 트럼프 대통령 지시에 대한 실행계획 및 법적 영향 등을 논의한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심야 트윗’을 통해 “보이지 않는 적으로부터의 공격과 위대한 미국 시민의 일자리를 보호할 필요를 고려해 미국 이민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해 워싱턴 정가 등을 발칵 뒤집어 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도 실행 준비가 미처 되지 않은 정책을 공개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고 WP는 보도했다. 일부 국토안보부 당국자의 허를 찔렀고, 참모들은 공표 내용을 실행하기 위해 허둥대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전면적인 이민 행정명령 안에 예외조항이 포함될 수도 있지만, 이민 희망자들이 코로나19 감염자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미국에 들어올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는 불확실하다고 WP는 전했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특정 영주권 발급을 중단하는 이민 제한 정책을 60일간 실시하되 기한 연장 여부는 추후 결정하는 한편 미국 노동자 보호를 위한 이민 관련 조치를 추가 검토한다고 공식 설명했다.

WP는 미국이 이미 유럽·중국을 비롯한 집중발병 국가들로부터의 입국 금지 등을 광범위하게 실시하는 상황에서 이민을 중단시키는 것은 언제든 미국에 들어올 준비가 돼 있는 수십만 명의 비자 소지자 및 영주권 취득 희망자 등에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들 상당수는 미국 국민의 가족이다. 이는 미 역사상 전례 없는 조치로, 미국 시민의 약혼자나 자녀, 그 외 친지를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에 처하게 할 수 있다고 WP는 지적했다.

민주당 인사들과 비영리 정치단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표에 대해 맹비난하고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중도하차한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반이민 어젠다를 가속하기 위해 파렴치하게도 대유행을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고 비판했으며, 의회 히스패닉 코커스 의장인 호아킨 카스트로(민주·텍사스) 하원의원은 “코로나19 확산 중단 및 생명 보호 실패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한 시도일 뿐 아니라 위기를 이용해 반이민 어젠다를 진전시키려는 독재자와 같은 조치”라며 “그의 분열을 거부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미 시민자유연합의 안드레아 플로레스는 “트럼프가 생명을 구하는 것보다 반이민 화염에 부채질하는 데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한편, 한국시간으로 22일 오후 6시 기준,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82만여 명으로 늘어났고, 사망자도 4만 5000명을 넘어섰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일부연합뉴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