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죽은 표(死票)와 눈먼 표(盲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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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민생당 손학규 상임선대위원장이 지난 16일 총선 패배 입장발표 회견에서 사죄하고 있다. 연합뉴스

21대 총선이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유명한 희극 배우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을 했다. 가까이서든 멀리서든 아마 이번 선거의 결과는 누구에게는 희극일 것이고 다른 누구에게는 비극일 듯싶다. 그런데 내게는 이번 선거가 희극처럼 보인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바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때문이다. 우리 헌정 사상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위성정당 소동을 벌이면서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 의석의 대부분을 나눠 가졌다. 여러 정당들의 이해관계를 맞추다 보니 누더기가 되기는 했지만, 애초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로 한 명분은 사표 방지와 다양한 정치적 의견을 가진 군소정당들의 국회 진출을 조금이라도 더 쉽게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새롭게 국회에 진출한 군소정당은 하나도 없다.

이번 총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군소정당 원내 진출 기대했지만
거대 양당 싹쓸이로 지역주의 심화

부산에서 여당 3석으로 줄었지만
득표율은 40%로 오히려 더 높아져
승자 독식구조가 사표·눈먼 표 양산

선거가 거대 양당의 양자 대결로 모아지면서 선거 결과에 대해서도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중간지대 정당들이 제대로 의석을 얻지 못하면서 과거의 지역주의가 다시 강화된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이번 선거에서 여당은 전국적으로 압승을 거두었지만 영남권에서는 거의 참패에 가까운 성적을 냈다. 부산의 경우를 봐도 지난 총선에서는 여당이 5석을 차지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겨우 3석에 그쳤다. 이런 결과만 보면 지역주의가 다시 강화된 듯싶기도 하다. 그러나 선거 결과를 조금 더 꼼꼼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의석은 줄었지만 여당이 얻은 득표율은 오히려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부산의 지역구 18곳 가운데 여당 후보들이 40% 이상의 득표를 한 곳이 지난 선거에서는 8곳에 불과했으나 이번 선거에서는 16곳에 이른다. 거꾸로 말하면 부산에서는 40% 가량의 표가 사표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은 여당과 야당의 처지만 바뀌었을 뿐 서울에서도 마찬가지고 전국적으로도 역시 그렇다. 국민들의 민심이 어떤가와는 상관없이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지금의 선거제도는 엄청난 수의 사표를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는데, 부산시민들이 잃어버린 40%의 표는 도대체 어디 갔을까? 솔직히 나는 비례대표 투표를 하면서 내가 어떤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지 제대로 알고 투표하는 유권자가 몇 명이나 될는지 궁금하다. 후보의 명단은 있지만 이 후보가 어디서 무엇을 하던 분인지, 내가 왜 이 후보를 지지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던진 표가 과연 내가 원하는 후보에게 가는지는 더욱 모르겠다. 앞 순위에 있는 후보에게는 투표하고 싶지 않고 내가 지지하고 싶은 후보는 한참 뒷번호여도 내게는 선택할 방법이 없다. 한 마디로 비례대표 투표는 온통 눈먼 표인 것이다.

이런저런 문제점들을 모두 젖혀 두더라도 비례대표제도에서 내가 가장 궁금한 일은 왜 비례대표 투표에는 지역이 없는가이다. 국회는 당연히 국사를 논의하는 곳이다. 하지만 그 대표들은 모두 지역에서 선출한다. 지역의 대표들이 모여 국가의 문제를 의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례대표도 당연히 지역의 대표들로 구성해야 옳지 않은가말이다.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이 비민주적이라는 지적은 너무 당연하다. 뿐만 아니라 중앙당이 일방적으로 지명하다 보니 비례대표 후보자들은 자신만의 공약도 없이 선거에 나선다. 국회의원이 되어서도 지역이 없으니 중앙당의 거수기 노릇이나 할 뿐이다. 그러나 만약 비레대표 후보들이 지역 단위로 선출된다면 지역주민들의 민심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반영할 수 있을 터이고, 지역이 필요로 하는 공약들도 더 많이 개발될 터이다. 비례대표제도의 모든 문제점들이 한 번에 다 해결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던진 한 표가 누구에게 가는지는 알겠다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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