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부정(不正)선거’가 아닌 ‘선거 부정(否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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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원 폴리컴 대표

1830년 당시 프랑스 왕은 젊은 엔지니어를 ‘산업혁명의 나라’ 영국에 파견했다. 혁명적인 증기기관차를 연구하도록 한 것이다. 프랑스 엔지니어는 철도 궤도 옆에서 세심하게 이를 관찰했고, 그 결과를 파리로 보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게 움직일 리가 없습니다.” 기관차를 눈으로 직접 보고도 그는 이렇게 보고서에 썼다.

젊은 엔지니어가 눈앞에서 기관차를 직접 보고서도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한 것은 인식의 한계도 있지만, 세상을 이해하는 자신의 방식이 틀렸음을 인정하기 싫은 데서 오는 ‘부정(否定)’이나 ‘퇴행(退行)’ 같은 일종의 방어 심리가 작용한 탓이다. 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현실을 부정한 것이며, ‘그럴 리가 없다’라는 비이성적 믿음이다. 또한 보고 싶은 것만 본 ‘확증 편향’이다.

여당 압승으로 막 내린 21대 총선거
야당 일부에서 ‘부정 선거’ 의혹 제기

양 진영 대결 속 확증 편향 강화 영향
투·개표 과정에 조작은 전혀 불가능

상호 불신이 비이성적 믿음의 원인
우리 정치권이 해야 할 일 명확해져

21대 총선이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코로나19 사태가 오기 전까지 정권심판론이 국정안정론을 앞지르는 추세였다. 국정 지지도도 부정적인 평가가 높았다. 코로나19가 이를 일거에 뒤집었다. 정부 방역 대책에 대한 호평으로 국정 지지도가 상승했고, 결국 총선 사상 최고의 의석수를 집권 여당이 차지했다. 이런 엄청난 결과를 두고 미래통합당 일부 지지자와 보수 우파 유튜브를 중심으로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던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 직후 문재인 후보 지지자 일부도 부정선거를 주장했다. 개표가 조작됐다는 것이다. 방송인 김어준은 ‘더 플랜’이란 영화까지 만들어 개표 조작을 주장했다. 그런 그도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 직후엔 입을 다물었다. 이번 총선 후엔 반대쪽에서 김어준이 만든 영화를 근거로 개표 조작을 주장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다. 바뀌지 않은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 때마다 서로 다른 정당에 부정선거를 도와주었을까?

개표 과정을 조금만 이해하면 부정선거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부정선거 주장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전자개표기 조작이다. 이건 처음부터 선관위가 용어를 잘못 선택해 생긴 오해다. 전자개표기가 아니라 ‘투표지 분류기’다. 그저 후보별 유·무효표만 분류하는 기계다. 분류된 투표용지는 선관위 관계자와 각 후보 측 참관인들에 의해 일일이 확인 과정을 거친다. 최종 개표 결과는 개표 상황표에 수기로 기록되고, 각 정당 후보 측 위원들이 확인 도장을 찍어 최종 확정된다. 조작이 끼어들 틈이 없다.

둘째는 전산 조작이다. 이 또한 불가능하다. 선관위 개표 전산망은 외부 전산망과 연결돼 있지 않아 해킹 자체가 불가능하다. 전산으로 집계된 최종 집계 또한 각 개표소 참관인들이 최종 확인해 수기로 작성한 개표 상황표가 있어 의문이 있으면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셋째는 사전투표 조작이다. 관내·외 사전투표의 전 과정은 봉인될 때까지 CCTV로 촬영된다. 관내 투표는 CCTV가 설치된 방에, 관외 투표는 보안상 각 정당 추천의 구·시·군 선관위원 감시하에 구·시·군 국·과장실에 보관된다. 각 당에서 위촉된 선관위원들과 외부 감시단체가 매일 대조한 뒤 투표함에 직접 넣고 개표장에 옮겨질 때까지 24시간 이를 감시한다.

이외에도 여러 의혹이 제기됐지만, 확인 결과 단순한 주장이거나 착각으로 밝혀졌다. 덧붙이자면 중앙선관위는 엄정한 중립을 위해 상임위원, 사무총장, 기조실장, 선거실장 등 간부들을 특정 지역에 편중되지 않도록 골고루 배치하고 있다.

그런데 왜 선거 때마다 이런 주장들이 나올까. 가장 큰 이유는 불신이다. 정치적 진영화가 깊어지면서 보고 싶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 편향성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정보의 통로가 선택적이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끼리 이런 정보가 유통하면 확증 편향성은 강화된다. 객관적 사실보다 자기가 속한 진영의 주장에 의존하는 것이다. 자기 진영의 말만 믿고 상대 진영의 주장은 불신한다. 지금까지 언론에선 선거 때마다 팩트 확인을 보도했고, 선관위에서도 수없이 해명했지만 믿으려 하지 않는다.

정치가 갈등을 수렴해 해소하지 못하고, 오히려 갈등을 부추겨 정치적 이익을 취하거나 권력 쟁취를 위한 대결로만 일관하면 민심이 갈라진다. 시민 역시 자발적 정치 참여가 아닌 정치적 이익을 위한 동원 대상이 되면 정치적 진영화는 강화되고 불신은 만연해진다. 진영을 지키기 위해 현실을 부정하고 비이성적 믿음에 매달린다. 지난해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갈렸던 두 진영이 부정선거를 놓고 다시 격돌하고 있다. 21대 국회 개원을 한 달여 앞둔 시점이다. 또다시 제기되는 부정선거 논란은 우리 정치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하게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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