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진정한 사과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결혼을 약속한 유명 셰프와 여성 PD의 사과문이 최근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다. 한 여성이 예비 신부에게 유학 시절 집단폭행을 당했다는 인터넷 게시물에서 발단되었다. 이들이 올린 사과문은 사실 석연치 않았다. 가해자였음을 고백한 예비 신부는 “사실 여부를 떠나… 사과드립니다”라고 했다. 유명 셰프는 “사실을 떠나 결과론적으로… 마음이 무겁습니다”라고 했다. 이들은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고서야 재차 사과문을 올리고 방송에서 자진 하차했다. 사실이 아니라면 사과를 왜 한 것이고, 사실이라면 사과를 왜 이렇게 한 것일까.

사과를 잘 못 해서 화를 키우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정치인들은 사과 주체를 모호하게 만들어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들은 “제가 실수했습니다”라고 해야 할 것을 “실수가 있었습니다”라고 한다. 사과는 주어의 행동이 뚜렷한 능동태 문장으로 해야 하는 법이다. 사과할 때 전제 조건이 붙으면 효과가 없다. 사과는 무엇이 미안한지 적시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구체적인 배상 계획을 제시할 때 효과적이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성추행으로 전격 사퇴하며 부산시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런데 사퇴 기자회견문에는 피해자와 시민들을 향한 진정한 사과 의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불필요한 신체 접촉’이라는 표현은 파렴치한 범죄를 애써 감추려는 의도로 읽힌다. ‘강제 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는 정치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비겁한 수동태 사과다. ‘경중에 관계없이’라는 표현은 별거 아닌데, 억울하게 생각한다는 자기 고백이나 다름없다. ‘모든 허물을 제가 짊어지고 용서를 구한다’라니, 그러면 당신이 저지른 죄를 대신 누가 짊어지란 말인가. ‘부산을 너무너무 사랑했던 사람으로 기억해 달라’는 마지막 대목에선 그 뻔뻔함에 화가 치민다.

피해자가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비칠까 두려워 입장문 내용을 사전에 확인하겠다는 의견을 수차례 타진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상대방 마음이 누그러질 때까지 사과는 계속해야 한다. 2018년 회식 자리에서 양옆에 여성 직원들을 앉게 한 사진이 공개된 뒤 “잘못된 관습과 폐단을 안일하게 여기고 있었다”라는 정도의 사과로 넘어갔기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 성범죄 예방과 2차 피해 방지에 대한 부산시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 없이 무슨 진정한 사과가 되겠나. 사과하고 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시장 자리를 맡긴 게 후회스럽다. 어디에 있든 이참에 제대로 된 사과 방법이라도 배워 두라고 충고한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