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원장실에 고문 도구… 박인근도 살인 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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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부터 1987년까지 운영된 형제복지원 정문. 왼쪽 작은 사진은 형제복지원 건물 증축 공사에 동원된 소년 수용원생. 부산일보DB

한국판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 열 명 중 여섯 명은 경찰 등 공무원에 의해 수용됐고, 여덟 명은 수용 중 사망한 사람을 직접 봤거나 들었으며, 지금도 내전 경험 수준의 극심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실에서 고문 도구를 봤다는 증언도 나왔다.

부산시 실태조사 용역 최종보고
피해자 149명 대상 첫 공식조사
79.7% “납치·강제 연행 당했다”
83.2% “사망자 보거나 들었다”
“원장실 바닥에 피 흥건” 증언도


부산시의 ‘형제복지원 피해자 실태조사 연구용역’을 맡은 동아대 산학협력단은 지난 24일 부산시의회 중회의실에서 최종보고회를 갖고 이와 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부산시는 지난해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과 피해 생존자 지원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고 지난해 7월 연구용역에 착수했다. 이번 조사는 1987년 원생 탈출 사건을 계기로 형제복지원의 참상이 세상에 알려진 뒤 행정기관 차원의 사실상 첫 공식 조사다.

연구팀은 1975년부터 1987년 사이 형제복지원에 수용 경험이 있는 피해자 14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피해자 30명, 피해자 유가족 10명은 심층면접 조사도 했다.

149명 설문조사에서 피해자들은 수용 당시 대부분 15세 이하(74.5%)였고, 절반 이상(52.4%)이 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고 답했다. 부랑아 선도라는 명목과 다른 피해자들이 강제로 수용됐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열 명 중 여덟 명꼴(79.7%)로 납치 또는 강제연행으로 수용됐다고 말했는데, 경찰(56.4%)이나 공무원(3.4%)에 의한 수용이 과반을 차지해 수용 과정의 위법성이 드러났다.

학대와 강제노역은 일상이었다. 성추행(38.3%), 강간(24.8%) 등 성학대가 빈번했고, 자상(67.2%)을 비롯해 평균 4.7개 신체부위를 다쳤다. 수용 기간 동안 시설 내에서 사망자를 보거나 직접 들은 경험은 83.2%에 달했고, 3.4%는 사망자 처리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고 답했다.

퇴소 후에도 절반(51.7%)이 1회 이상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우리나라 국민의 평생 자살 시도 비율이 2.4%인 것과 비교하면 스무 배가 넘는다. 장애가 있다는 비율은 32.9%, 수급자 비율은 45%로 각각 전체 인구 비율의 6배, 13배를 웃돌았다. 연구팀은 설문에 참여한 피해자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유병률이 북부 우간다 내전을 경험한 지역사회 유병률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박인근 원장이 원생 폭행이나 살인에 가담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1980년 사업차 부산에 갔다가 싸움에 휘말려 수용된 A(74) 씨는 전기기술자라는 직업 탓에 박인근 원장실에 자유롭게 출입했다. 그는 심층면접에서 “원장실은 사무실 옥상 위에 따로 지어 놨는데 그 안에 야구방망이처럼 깎은 몽둥이 열댓 개, 대장간에서 만든 수갑 30개가 걸려 있었다”며 “하루는 원장이 불러서 가 보니까 피가 바닥에 흥건했다”고 진술했다.

부산시의회 박민성 의원은 “정확한 피해자 규모나 박인근 원장 일가 재산에 대한 조사 등이 자료 확보 등 한계로 더 깊게 다뤄지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행정기관 차원의 사실상 첫 번째 조사를 통해 국가 책임과 피해 규명의 첫걸음을 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향후 국가 차원의 진상 조사가 이뤄지거나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게 될 때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23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박인근 원장의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검찰총장이 신청한 비상상고 건을 처음 심리했다.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위한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과거사법)’은 지난해 연말 국회 통과가 무산됐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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