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 실세 아닌 ‘정당 공식 체계’로 지역 정치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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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돈 성추행 사퇴 파장] 부산 여권, 시스템 개혁을

27일 부산시의회 제285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시의원이 시정 질문을 하고 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성추행 사건으로 사퇴한 이후 처음 열린 이날 본회의에는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불명예 퇴진을 계기로 부산 여권이 비선 실세 주도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공식 라인인 정당 위주 시스템을 시급히 회복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광역자치단체장 사퇴라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는데도 같은 당 현역 국회의원이나 시의원조차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부산 여권이 과연 공적 시스템으로 움직이느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의원 등 ‘吳 사태’ 전혀 몰라
의석 줄어 비선 편중 심화 우려
‘선출직 중심’ 당·시정 운영 필요

오 전 시장은 지난 23일 성추행 사실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곧바로 잠적한 채 어떤 입장이나 해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번 일을 전적으로 도맡은 정무 라인 핵심들도 동시에 사라져 버렸다. 모든 과정이 마치 군사 작전하듯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

공식 직함을 가진 민주당 인사 대부분도 오 전 시장 사퇴와 관련해 “사전에 몰랐다”며 일제히 꼬리 자르기식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부산 민주당을 공식적으로 책임지는 부산시당위원장인 전재수 의원조차도 지난 23일 오 전 시장 사퇴 기자회견 직전 해당 사건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전 위원장은 “오 (전)시장이 사퇴 직전에 직접 전화해 ‘사고를 쳤다’고 알려와 그때 알았다”고 했다. 부산의 한 원외 지역위원장도 “기자회견 당일에도 (오 전 시장 사퇴 소문이 돌아서)건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상상도 못 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박인영 부산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시의회 핵심들도 지난 22일 밤 늦게 오 전 시장 측을 통해 해당 사건을 공유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시의원 상당수는 “정말 까맣게 몰랐다”는 입장이다.

2년 가까이 시정을 책임져 온 부산시장을 비롯한 핵심 인사들이 순식간에 무대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부산 여권 공식 라인에서는 공식적으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한다’는 해명만 반복하는, 이상한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

현재까지 부산 민주당을 좌지우지해 온 ‘친문 이너 서클’ 일부가 이번 일을 주도했다는 의혹만 꼬리를 물고 있다.

지역 정가에서는 부산 민주당 운영이 국회의원이나 시·구의원 등 시민에게서 권한을 위임받은 선출직으로 이뤄진 공식 시스템을 통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번 오 전 시장 사퇴처럼 시민 피해가 불가피한 대형 사건이 터졌는데도 정치적 책임을 누구도 지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또 반복될 수 있다.

오 전 시장 성추행 사건은 경찰 수사로 후속 처리를 하면 되고, 오 전 시장 개인의 정치적 책임은 그의 사퇴로 졌다고 볼 수 있지만 시정 공백 등 더 큰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당 안팎의 핵심 사안을 특정 비선실세가 주도해 처리하면서 공적 책임은 피해가는 민주당의 현 시스템은 개선돼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특히 이번 총선을 통해 민주당 소속 부산 국회의원이 6명에서 3명으로 감소하면서 가뜩이나 문제로 지적돼 온 비선 라인 편중이 심화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점도 우려를 낳고 있다.

당장 민주당 지방의원들은 이번 일로 지역 여론이 급랭하면서 타격을 입을까 걱정하고 있다. 부산의 한 시의원은 “다음 선거를 어떻게 치를지 벌써부터 걱정”이라면서 “시장 사퇴라는 엄청난 일이 벌어져도 전후 사정은 모른 채 책임만 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부산 민주당의 한 인사는 “부산이 보수 텃밭으로 굳어 있어 민주당이 지지세 확대가 필요했을 때는 특정 인사 주도의 당 운영이 효과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부산 지방 권력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정당 운영을 더 공개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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