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조망권 새치기’ 고층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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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조각났다… 영도가 가라앉았다…

‘갤리리수정’에서 2017년 촬영한 사진에는 영도가 뚜렷하게 눈에 들어오나 며칠 전 찍은 풍경에는 봉래산 꼭대기만 조금 남아 있을 뿐이다. 2017년 풍경(위)와 2020년 풍경. 윤창수 사진작가 제공

‘갤리리수정’에서 2017년 촬영한 사진에는 영도가 뚜렷하게 눈에 들어오나 며칠 전 찍은 풍경에는 봉래산 꼭대기만 조금 남아 있을 뿐이다. 윤창수 사진작가 제공
“부산의 영도가 사라지고 있다”라는 풍문이 산 밑으로 밀려 내려왔다. 진원지는 산복도로에 자리한 어느 갤러리. 사방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서 나온 말이니 바람에 떠도는 소문이라고 마냥 치부할 일은 아닐 터. 개인의 경험도 궁금증을 더했다. 마라톤 대회 때 영도를 마주 보며 부산항대교 위를 뛰었던 기억이 선명히 떠올랐다. 비스듬히 드리운 강선(鋼線)으로 바닥 판을 지탱하는 사장교란 점이 기이한 체험을 안겨 줬다. 수많은 쇠줄이 소실점으로 수렴되는 듯 공중의 한곳을 향해 치솟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거대한 비상 행렬을 마주하고 뛰면서 나 자신도 곧 영도 봉래산 정상에 설 것 같은 환상에 빠졌던 것이다. 바다 위를 달리는 다리와 바다에 떠 있는 섬과의 조화는 그처럼 오묘했다.

51년 된 수정아파트에 자리 잡은
51살 윤창수 작가의 갤러리수정
관람객 입소문 꾸준히 작품 공개
주민 소통 문화공간 자리매김
고층 아파트 우후죽순 들어서
불과 3년 만에 바다 풍경 사라져
어르신 ‘바다 바라볼 권리’ 실종
일부 ‘전망 전유’ 횡포에 분노


■산복도로 위 공중 주택 수정아파트

초량시장 입구에서 시내버스 52번에 몸을 실었다. 산복도로 위에 있는 수정아파트로 가기 위해서였다. 버스가 더 올라갈 곳이 없는 종점에 자리했기에 일망무제(一望無際)의 전망이 시원하게 전개되는 장소이다. 도대체 부산에서 큰 섬인 영도가 어떻게 되었길래? 이 의문을 직접 풀기에 더없이 좋은 포인트이기도 하다. 버스가 헐떡이며 가팔막을 오른다. 섰다 출발할 때 약간씩 뒤로 밀린다. 그렇게 산복도로에 올라 한숨 돌리자마자 다시 언덕 위로 방향을 잡는다. 수정아파트는 그만큼 공중에 있는 공동주택이다. 버스에서 내릴 때 케이블카 정류장에서 나타나는 현기증을 잠시 맛본다.

수정아파트는 1969년에 건립되었으니 나이가 자그마치 51살에 이른다. 산 아래였으면 벌써 재건축 말이 나올 법하지만, 여기는 활발하지 않다. 시간도 달리 흐르는가 보다. 애초 4~5층 높이로 18개 동을 지었으나, 지금은 17개 동이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말이 아파트이지 연립주택 규모로 보는 게 맞는가 싶다. 세월의 무게 속에 퇴락한 모양이지만, 단독주택이 주류를 이뤘던 그때에는 제법 때깔 나는 보금자리였다.


‘갤러리수정’을 배경으로 한 윤창수 사진작가.

■‘갤러리수정’, 응달에 햇살을 비추다

집의 숲에서 ‘갤러리수정’을 찾아 나선다. 수정아파트 안에 자리한 그림 방이다. 부산에서 보기 드문 사진 전문 화랑이 옛날 공동주택 안에 있다는 사실이 신비롭다. 지난 2017년 5월에 4동 A408호에 갤러리를 연 이는 바로 윤창수(51) 사진작가. 그러고 보니 아파트와 윤 작가가 동갑내기이다. 그는 20대에 살던 바로 그 집에 전시 공간을 만들었다. 그가 갤러리를 열게 되는 사연은 10년 전으로 올라간다. 사진 작업을 막 시작할 무렵이었다. 자연스레 옛 흔적을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으로 이곳을 찾은 그는 충격에 휩싸였다. 어린아이들이 뛰놀고, 젊은이들이 숨 쉬며, 어른들이 생업을 잇던 활기는 오간 데 없었다.

윤 작가의 작품 역시 그렇게 흘렀다. 창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를 표현하는 작품을 주로 찍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런 시각은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졌다. 시선이 외부자에서 내부자로 바뀌면서 동질감이 깊이 스며들었다. 작품도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고 앵글도 주민들의 일상으로 향했다. 그때부터 그들의 밥상, 부엌, 옷장, 표정이 단골 피사체가 됐다. 이런 유형학적 사진 형식은 “이곳에도 사람이 있다”라는 외침이었다. 힘없이 침묵하니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이들을 대변하는 행위였다.



■“바다는 우리만 볼게”라는 삿된 음성

‘갤러리수정’ 개관 역시 맥락을 같이 한다. 주민과 소통하는 문화공간을 만들어 낡고 불편한 곳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서였다. 채 10평이 안 되는 공간이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월 1회 정도로 꾸준히 사진 작품을 걸고 있다. 처음 갤러리 문을 열 때 남모를 고민이 있었다. 창밖 조망이 워낙 멋이 있어서 관람객들이 작품에 집중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만큼 ‘갤러리수정’은 탁월한 뷰를 자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방문한 당일 ‘갤러리수정’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코로나19 탓에 전시를 잠정 중단한 까닭이다. 특히 감염병에 취약한 어르신들이 많이 사는 곳이기에 화랑 주인의 염려는 더 각별하다. 전화를 넣자 달려온 윤 작가가 문을 열었다. 바다 쪽 창문을 열고 영도 방향으로 내다보니 정말 섬이 가라앉고 있었다. 봉래산 방송송신탑만 조금 남았을 뿐이다. 며칠 후면 우람한 체격으로 보는 이와 키 높이를 경쟁했던 영도 전체가 사라질 판이다. 우후죽순처럼 올라온 고층 아파트들이 영도가 물밑으로 없어지는 착각을 일으켰다. 이런 일은 불과 1년 전부터 벌어졌다. 갑자기 30층 이상의 고층 건물들이 쑥쑥 들어서더니 영도를 막기 시작했다.

정면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10년 전 슬그머니 한 단지가 들어서더니 현재는 성벽을 방불케 할 지경이 됐다. 좌측 역시 건물 사이로 풍경이 조각나 버렸다. 진행 중인 골조 공사가 완공되면 그 파편마저 흔적 없이 사라지리라. 지난 3년간 이 변화를 몸소 겪은 윤 작가의 심정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그가 20대에 함께 생활하던 이곳 어른들은 조망권을 즐길 겨를이 없었다. 어두운 새벽을 헤치고 일을 나가면 별을 보면서 퇴근하기 일쑤였다. 바다를 내려다보며 여유를 즐기는 자체가 사치였다. 그분들이 노년에 이르자 이제 고층 건물들이 그 전망을 독차지해 버렸다. 젊어서도 늙어서도 조망권은 언제나 남 몫이었다. 이게 가난하고 소외당한 사람들의 운명인가 하는 생각에 윤 작가의 마음이 무겁다. “바다는 우리만 볼게”라는 부자들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며 그의 표정이 바뀐다.

■‘자연은 공공재’라는 인식 정립 절실

고층 아파트 건설은 조망권 새치기나 다름없다. 바다 풍경은 부산 시민 누구나 산 중턱을 찾으면 즐길 수 있는 공유재산이다. 이를 꼭대기 층에 거주하는 일부 주민이 독점하는 행위는 반칙이 아닐 수 없다. ‘갤러리수정’은 이제 작품 감상을 잠시 놓칠 만큼 좋은 뷰를 가진 호사를 잃어버렸다. 그 대신 여기를 찾는 사람들은 전망을 전유(專有)하는 자본의 횡포에 예외 없이 분노를 표시한다. 자연 풍광마저 있는 자들이 모두 차지하는 현실을 개탄하는 사회적 담론의 장소로 변한 것이다.

호주 시드니에 더들리 페이지라는 평지가 있다. 시드니 항의 아름다운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 명소이다. 그 땅은 원래 더들리 페이지라는 인물의 개인 부지였다. 이 사람은 그곳의 멋진 전망을 혼자 보기 미안했던 모양이었다. 아무 건물도 짓지 않는 조건으로 시드니시에 기부했다. 이처럼 자연은 모두의 것이라는 인식을 우리는 가질 수 없는 것일까. 일부 계층이 전경을 금고 속 재산처럼 여기는 곳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 그런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다시 탄 시내버스 52번에는 몇 명의 노인만 앉아 있었다. 

이준영 위원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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