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가문을 관통한 전쟁과 광기의 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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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책 / 실비 제르맹

<밤의 책>은 프랑스 현대문학의 주요 작가인 실비 제르맹의 장편소설이다. 한 가문을 관통해간 전쟁과 광기의 대서사시다. 마르케스의 노벨상 작품 <백 년 동안의 고독>에 비견되는 마술적 리얼리즘을 구사하고 있는데 1870년 보불전쟁에서 1945년 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숱한 전쟁의 길목에서 살아간 ‘페니얼’ 집안의 수난사가 담겨 있다.

‘페니얼’은 하느님의 얼굴을 본 장소인 ‘브니엘’을 뜻한다. 소설에서는 인간의 불행에 무관심한 신의 침묵, 맨 얼굴을 봤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결국 스스로 이 찢어진 세계와 맞서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이다. ‘신은 구렁텅이 속에 빠져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인간들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으므로, 마땅히 신의 그 모든 악의를 고발하고...’

마르케스 작품처럼 근친상간 얘기도 들어 있다. 전쟁의 광기에 사로잡힌 아버지는 ‘신의 잔혹함’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딸을 통해 아들을 낳는다. 그 아들은 딸의 아들이자 동생이다. 왼쪽 눈에 금빛 반점을 갖고 태어나며, 이후 그의 자녀 15명도 모두 금빛 반점을 갖고 태어난다. 역사의 광기와 인간의 욕망 속에서 누대의 거대한 서사가 이뤄져 간다. 잔인한 삶을 이겨내는 내면의 힘은 무엇인지를 캐고 있다. 실비 제르맹 지음/김화영 옮김/문학동네/504쪽/1만 5800원.

최학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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