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반복되는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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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대표

세계적 건축가 ‘렘 콜하스’ 건축의 견학 길이었다. 수원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뿌연 미세먼지로 흐리고 복잡하다. 오랜 영어로부터 해방이었으나 사회적 거리 제한 속에서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다. 세상은 재난의 와중에도 연휴를 맞는 작은 해방감으로 들떠 있었고, 그날은 근로자의 날을 이틀 앞둔 날이기도 하였다.

라디오에서 긴급 뉴스가 흘러나온다. “현재 26명 사망 확인. 사망자는 더 속출할 것으로 보입니다.”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신축 현장 화재 소식은 들뜬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던 아픈 기억은 셀 수 없다. 더욱이 지명이 생소하지 않다. 몇 년 전에도 꼭 같은 사고가 있었음을 아나운서가 말했다. 결국, 저녁 뉴스는 사망자를 38명으로 확인하였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 너무 안타까워
몇 년 지나도 ‘닮은꼴’ 대형참사 반복

대형건물 공사 핵심은 공사비와 공기
발주자는 ‘더 싸게 더 빨리’에 유혹

시공자·기술자들 싼 대가 요구당해
경쟁 구도 속 기술력 발휘는 멀어져

서울 남쪽 경기도 이천 지역에는 유달리 대형 물류창고가 많다. 지하에 냉동창고를 포함하는 이 건물 또한 일반적 패턴의 물류창고임을 짐작하겠다. 건축산업의 측면에서 물류창고는 중요한 분야다. 직거래 방식이 점점 사라지고 유통 산업이 발전한 것에 기인한 결과이다. 무역과 생산이 집중된 경인 지역에서 전국망을 연결하기에 이천, 광주, 여주만큼 좋은 위치가 있을까? 나는 늘 인근을 지나면서 그 건물들의 규모에 놀라고 단순한 형태와 넓은 면의 디자인에 관하여 아쉬움을 말하기도 하였다.

지난번의 사고와 이후의 상황 변화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또 반성하게 되며, 몇 가지의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나 또한 건설 산업의 종사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인이 되었다. 모든 건설 종사자는 일순 파렴치한으로 전락했다. 부실시공의 주범. 아니나 다를까 언론의 관점은 거기에 집중되고, 지난 일들을 들추어내고 단기적 방안과 대책을 쏟아낸다. 논의가 얼마나 더 지속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왜 이런 비극은 반복될까?

상식적이지만 이런 대형 건물의 공사 현장의 핵심은 공사비와 공기에 있다. 그게 사업 성패의 일차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발주하는 사람의 관점이 오로지 거기에 집중된다. 건설종사자로서 비겁한 변명일지 모르겠지만, 불행하게도 아직 우리의 산업구조는 더 좋은 재료와 더 꼼꼼한 시공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 세계엔 개발도상의 단어들이 여전히 난무한다.

건설의 최종 목표를 아름답고 튼튼하고 안전한 건물이라 말하면서, ‘더 싸게 더 빨리’라는 말을 몰래 숨긴다. 하물며 그런 논리를 끌고 가는 1차 경제 주체인 발주자의 의지와 주장은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거기에 시공자를 포함한 기술자의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한편의 종사자인 건축 설계 감리자들은 늘 싼 대가를 요구당한다. 경쟁이라는 한마디로 기술력의 발휘는 점점 멀어진다. 다른 편의 종사자인 시공자들의 사정은 더하다. 설계도와 관계없이 더 싼 재료, 교과서와 달리 더 빠른 방법으로 공기를 당겨 주어야 발주자의 눈길을 끄는 것이다.

그리 어색할 것도 없이 우리 사회는 늘 이런 방식으로 유지되어 왔다. 어긋진 자본주의의 비극을 제어하기 위하여 여러 수단을 동원하기는 하지만, 경쟁의 위력을 꺾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법, 정치, 이론, 캠페인, 심지어 도덕을 동원하여 자본의 오류를 꺾으려 시도하지만, 그 또한 자본의 구렁텅이 속이니 참 어려운 것이다. 학술과 이론은 사태를 예견하고 앞서가지 못한다. 법은 항상 뒤치다꺼리와 졸속을 반복하며 오히려 일을 키운다, 정치는 더 파렴치하여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였다. 오히려 그들이 더 나쁘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나는 할 말이 없고,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파렴치한 사람들이 저지른 잘못의 대가를 모두 그들이 안고 간다. 이 비극 앞에 누구를 탓하랴. 나 또한 ‘렘 콜하스’의 건축 앞에서 희희낙락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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