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거위의 깃털을 뽑되 목은 비틀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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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우 경제부 차장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내는 것이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조원동 경제수석은 ‘증세 없는 복지’ 실현을 위해 비과세 감면 축소를 골자로 하는 세법개정안의 취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발언을 했다가 여론의 호된 역풍을 맞았다. 조 수석의 이 발언은 프랑스 루이 14세의 재무상이었던 콜베르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조세당국으로서는 어떻게 보면 금과옥조이자 ‘영업비밀’과 같은 경구인데, 이 말이 막상 한 국가의 경제 정책을 책임지는 수장의 입에서 여과 없이 나오면서 국민의 감정선을 건드리고 말았다.

7년이나 지난 사건을 이 시점에서 재론하는 것은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한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의 지원 대상을 놓고 벌어진 최근의 사회적 논란 때문이다. 정부는 당초 소득 하위 70%에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려고 했지만, 총선 과정에서 여당이 100% 지급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전 국민 지원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현 정부의 복지에 대한 원칙과 철학 부재가 여실히 드러났다. 당장 왜 소득 상위 30%는 지원 대상에서 배제돼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웬만한 맞벌이 부부는 해당이 될 만큼 소득 상위 30% 대상 범위가 넓고, 이들 중에서도 임금이 깎이거나 휴직에 들어가는 등 코로나 사태로 고통을 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 2011년 미국의 월가 점령 시위에서 타도 대상이 됐던 0.1% 슈퍼리치나 금융자본가들이 아니라 성실히 일해서 세금 꼬박꼬박 내는 우리 이웃들이다. 재정건전성이 문제됐다면 애초부터 지원금 규모를 4인 가구 기준 70만 원 정도로 줄이면서, 전 국민에 지급하는 방식으로 했으면 될 일이다. 정부가 재난지원금 지급을 두고 7 대 3이라는 임의의 소득 벽을 세워 놓고 국민들을 갈라치기한다는 비판이 나온 배경이다.

재난지원금에 투입되는 예산이 커지자 정부가 고안해낸 ‘자발적 기부’ 역시 뒷맛이 씁쓸하긴 마찬가지다. 여당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행 차원”이라고 표현했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재난지원금 전액을 기부하기로 하면서 “어디까지나 기부는 선의의 자발적 선택이므로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해서도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회식 자리에서 “먹고 싶은 것 마음껏 시켜, 난 짜장”을 외치는 ‘꼰대 부장’의 이미지가 떠오른다는 촌평도 나온다.

재난지원금은 모든 국민에 지급되는 것인데, 기부로 인해 마치 부유한 사람들이 가난한 이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인상을 주게 된다. 인터넷 공간 등에서는 재난지원금을 꿋꿋이 받아 가겠다는 상위 30%를 두고, 사회적약자 몫까지 뺏어가는 탐욕가로 몰아가는 날선 적의가 난무한다.

우리나라에서 소득세를 안 내는 면세점 이하 저소득자는 40%에 달한다. 재난지원금 지급을 통해 구멍 난 국가재정은 결국 고소득자들의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국가 살림살이를 충당하는 이들을 복지 혜택에서 소외시키거나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마음을 불편하게 해서는 건전한 국가재정은 물론 사회 통합도 요원할 것이다. 거위의 깃털을 살짝 빼내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렇다고 목을 비틀어서는 곤란하다.

widen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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