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의 세상 터치] 해양수도 부산을 위한 해양특별시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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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부산에 대한 발칙한 상상 하나. ‘부산은 대한민국의 수도(首都)다.’ 부산시민 입장에서 이보다 기분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그러다 금세 어림도 없는 소리란 걸 깨닫고 체념하게 된다. ‘서울공화국’을 낳은 수도권 중심주의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남한뿐만 아니라 북한을 아우르는 한반도의 수도 부산이 엄연히 존재한다. TV 드라마 속 현실인 게 아쉽긴 하지만.

산책과 관광 명소인 부산 해운대 동백섬이 수도의 심장부다. SBS가 지난달 17일부터 매주 금·토요일 밤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를 보면 그렇다. 현재의 한국과 평형세계를 이루는 대한제국에선 수도가 서울이 아니라 부산이다. 동백섬 일대에 웅장한 황궁이 조성돼 있다. 기발한 점은 1945년 부활한 대한제국이 분단 없이 입헌군주제를 시행하며 주적 일본으로부터 우리 바다와 국토를 맨 앞에서 지키겠단 의지에 따라 부산을 수도로 정해 황실을 뒀다는 설정. 총리가 매주 부산으로 올라가 황제에게 업무보고를 하고, 총리실과 의회가 있는 서울은 정치적 수도에 그친다.

‘피란수도’ 역할 충실히 수행한 부산
해양수산 강점 살려 ‘해양수도’ 지향

해양자치권 없고 법적·제도적 한계
중앙정부 뒷받침 인색, 헛구호 그쳐

해양특별시 승격이 돌파구 될 수도
수도권 대응 경제거점에 부산 제격

은은하고 빛바랜 사진 같은 과거 장면들을 들춰보면, 부산이 실제 수도였던 적이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8월 18일~10월 27일, 1·4후퇴가 있은 1951년 1월 4일~1953년 7월 27일 등 두 차례다. 부산은 짧은 기간이나마 임시 수도로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너끈히 해냈다. ‘피란수도’는 큰 의미가 있으나 전쟁통이라 영화롭다고 표현하기엔 무리가 있다.

해양수산업이 발달하고 올해 개항 144년이 되는 부산은 흔히 ‘해양수도’로 불려지곤 한다. 2000년에 부산시가 지역 특성을 활용해 부강한 해양도시를 만들자는 취지로 해양수도를 선언한 이후부터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 부산 공약으로 ‘동북아 해양수도 건설’을 내걸었다. 지난달 23일 사퇴한 오거돈 전 시장의 시정 구호 역시 ‘시민이 행복한 동북아 해양수도 부산’이다. 해양수도가 부산의 강점을 잘 살린 미래 비전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양적·질적으로 발전한 해양수도가 부산에 생겼을까? 긴 세월이 흘렀지만 해양수도는 아직도 요원한 실정이다. 해양수도 문제는 여전히 지역민의 간절한 바람인 반면 중앙정부에겐 외면하고픈 대상이다. 세계 주요 항만들을 상대로 한 국제경쟁력 강화가 절실한 부산항 가까운 곳에 대규모 광양항을 신설해 역량을 분산한 투포트 정책, ‘동북아 물류 허브’를 지향해 집중 육성이 필요한 부산을 ‘동북아 물류 중심국가’라는 유사 정책에 편입시켜 구심축의 하나로만 인식하는 정부,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않는 문 대통령의 해양수도 공약 등을 지켜보며 안타까움을 넘어 한숨 쉬는 시민과 해양업계 종사자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수동적인 정부 탓에 부산의 해양수도 기능을 뒷받침할 법적·제도적 장치는 거의 없는 상태다. 부산시는 지역에 집적되거나 산재한 해양수산의 다양한 분야에 걸친 산·학·연 인프라를 제대로 총괄하며 활용치 못할 정도로 해양수도는 허울뿐이다. 세계 유수의 해양도시들과 달리 항만자치권이 없어 바다에 유람선 한 척 마음대로 띄울 수 없는 부산. 국내 유일의 국제관광도시로 지정된 체면이 서질 않는다. 북항 재개발사업은 부산의 미래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직결되는데도 해양수산부가 직접 담당해 부산시는 구경꾼과 다름없는 처지다.

도저히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부산해양특별시’ 승격 추진이 해답일 수 있다. 부산 해양산업특구 지정, 관련시설 설치와 유지 비용에 관한 국비 지원, 관련기업 조세 감면, 인재 양성과 글로벌 교육환경 조성 등 구체적 실천방안을 담은 특별법 제정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야 하겠다. 부산이 해양자치권을 행사하며 주도적·선제적으로 해양의 새로운 어젠다를 개발해 국내외 해양수산계에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고 정부와 동등하고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등 진정한 동북아 해양수도가 되기 위해서다. 지역적으론 수산과 해운·항만·조선 등 전통산업의 고도화를 꾀하는 한편 해양바이오, 첨단장비 등 해양 신산업과 해양과학기술을 성장시켜 해양경제 기반의 도시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발전전략을 전개할 시점이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해양수도를 선포한 지 20주년인 올해를 명실상부한 해양수도를 실현하는 원년으로 삼자. 과대팽창으로 국토균형발전을 저해하는 수도권의 부작용을 줄일 새 경제거점으로 부산이 제격이다. 그래서 해양부국 건설의 첨병이 될 부산에 실질적인 힘을 전폭적으로 실어주는 정부를 원한다. 4·15총선 때 ‘부산해양특별시 설치 및 발전특별법 입법화’를 1호 공약으로 내세워 부산에서 압승한 미래통합당의 공약 이행 여부에도 주목한다.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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