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 구름도 저수지에 빠져 버렸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밀양 위양못

경남 밀양시 위양못 맑은 물에 푸른 하늘과 산, 초목은 물론 하얀 구름, 이팝나무꽃까지 풍덩 빠져 한 폭의 산수화 같은 절경을 이루고 있다.

경남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에 아담한 저수지가 있다. 신라 시대에 만들었다고 하니 그 역사가 자그마치 1000년을 넘었다. 저수지에는 수백 년 내력을 간직한 웅장한 이팝나무가 서 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이곳에는 사람이 몰린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풍경을 연출하는 저수지와 이팝나무의 조화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바람이 선선하던 봄날 밀양으로 달려갔다.

신라시대 만들어진 1000년 역사 저수지
봄 맞아 하얀 꽃 매달린 이팝나무 장관
2km 남짓 숲길·작은 고택 완재정 등 명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서 우수상 받기도


■엿방 아이의 추억

50년이 다 된 옛일이다. 밀양에 유명한 엿방 세 곳이 있었다. 당시에는 재활용수집업체를 고물상이나 엿방이라고 불렀다. 한 엿방 주인에게 아들이 있었다. 아이는 호기심이 많았다. 어느 해 봄 날씨 따뜻한 일요일, 초등학교 1~2학년이던 아이는 고물 수집을 하러 나선 ‘송 씨’를 따라갔다. 한 살 많았지만 친구 같았던 송 씨 아들도 함께였다. 손수레에 설치한 엿판에 물통과 도시락도 얹었다. 때로는 걷다가 때로는 손수레에 올라타면서 흙먼지 풀풀 날리는 길을 여러 시간 걸었다.

아이는 처음 가보는 시골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에 젊은 사람은 보이지 않고 몇몇 어르신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마을 이곳저곳을 오가던 아이의 눈에 큰 저수지가 보였다. 저수지의 큰 나무 한 그루가 유독 눈에 띄었다. 거기에는 하얀 꽃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나무 뒤에는 매우 낡은 작은 집 하나가 숨어 있었다. 저수지에 비친 나무와 집은 아이가 보기에도 무척 아름답고 신기해 보였다. 도깨비가 나올 것 같았고, 신선이 바둑을 두고 있을 것 같았다.

송 씨가 손수레에 종이, 고철 등을 가득 싣고 돌아왔다. 기분이 좋은지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아이의 머리에서는 저수지와 큰 나무, 그리고 송 씨의 웃음 같은 하얀 꽃이 떠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아이는 오십 대 어른이 됐다. 그는 우연히 차를 몰고 고향에 가던 길에 시골 마을을 지나게 됐다. 문득 낯익은 저수지가 보였다. 그는 잠시 차를 세웠다. 큰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나무에는 하얀 꽃이 무성하게 매달려 있었다.

위양못과 주변의 숲, 그리고 이팝나무는 오래전 엿장수를 따라갔을 때 봤던 바로 그곳, 그 나무였다. 이곳은 2016년 ‘제16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을 만큼 풍광이 아름답다. 이팝나무는 5월 중순 무렵이면 전체가 하얀 꽃으로 덮인다. 꽃이 마치 쌀밥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팝은 이밥과 같은 말인데 쌀로 지은 밥을 의미한다.

50년 전 위양리로 가는 도로는 좁은 비포장이었던데다 버스도 하루에 한두 대만 다녔다. 위양못 경치를 구경하러 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2~4차로 아스팔트 도로가 깔려 밀양시청에서 10분이면 쉽게 갈 수 있다.

위양못 둘레길 정자.

완재정으로 가는 길.
하얀 이팝나무꽃.

■위양못 이팝나무

위양못은 신라 시대에 농사용으로 만든 저수지다. 위양이라는 이름은 글자 그대로 ‘양민(백성)을 위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저수지 물을 이용해 아래쪽 너른 논에서 농사를 지었다. 제방에는 소나무, 이팝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등 각종 나무를 심어 풍경을 가꿨다. 지금 저수지는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인 1634년 밀주(밀양의 옛 이름) 부사 이유달이 다시 쌓은 것이다.

위양못 입구에 칠암교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 돌다리가 하나 있다. 다리를 건너가면 짙은 수풀에 둘러싸여 있는 섬이 나온다. 그 섬에 작은 고택이 하나 있다. 안동 권 씨 출신인 조선시대 학자 권삼변이 만든 완재정이다. 그는 열여섯 살 때 임진왜란이 터지자 의병으로 궐기했지만 왜군에 잡혀 일본에서 10여 년간 포로 생활을 했다. 28세 때 겨우 고향으로 돌아온 뒤 학산정사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면서 살았다. 그는 위양못에 정자를 짓고 싶었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 꿈을 이루지 못했다. 나중에 1900년에 여러 후손이 뜻을 모아 완재정을 만들어 그에게 바쳤다.

완재정 툇마루에 잠시 엉덩이를 걸친다. 쪽문 사이로 축 널어진 이팝나무 가지와 거기에 달린 꽃과 푸른 저수지 물이 보인다. 시원한 바람에 실려 낮은 담장을 넘어 온 꽃향기는 스트레스에 지친 도시인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완재정이라는 이름은 <시경> ‘진풍’ 편에 나오는 시 ‘겸가’에서 유래했다. 휴대폰으로 시를 찾아 머릿속으로 읊으니 마음이 더욱 편안해진다.

‘갈대는 무성하고 하얀 이슬 촉촉하네/늘 그리운 당신이 물 건너에 있다기에/거슬러 올라가려니 험한 길 가파르구나/물 따라 흘러가니 모래섬에 당신 얼굴 아른거리네.’

위양못 둘레길은 햇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숲이다. 2km 남짓한 길이어서 천천히 한 시간 정도만 걸으면 되는 거리다. 물가에는 왕버들과 팽나무 고목이 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머리를 감는 것처럼 아예 물에 가지를 푹 담근 나무도 있다. 물이 얼마나 맑은지 하늘에서 넋을 잃고 쳐다보던 구름과 산도 저수지에 빠져 버렸다.

위양못의 하이라이트는 둘레길에서 바라보는 완재정 풍경이다. 완재정을 중심으로 주변의 산과 온갖 초목이 호수에 빠져 그림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만개한 완재정 이팝나무꽃도 다른 초목과 함께 호수에 조용히 침잠해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이곳에서 조용히 맑은 공기를 마시고 새 소리를 들으면서 완재정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정말 커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파랑새를 어디서 찾아다녔을까. 여기가 무릉도원이구나.’

굳이 이팝나무에 꽃이 필 때가 아니더라도 위양지는 아름다운 저수지다. 마치 전설이나 신화에 나올 것 같은 이색적이고 신기한 분위기를 풍겨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산책 여행의 별미다.

둘레길 벤치에 잠시 앉아본다. 저수지 건너 완재정은 아무 말 없이 낯선 나그네의 휴식을 지켜보고 있다. 문득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린 뒤 저수지에 발을 담그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목까지 담근 채 푸른 하늘 연못에 새겨진 이팝나무 가지를 하염없이 쳐다보고만 싶다. 그때 송 씨와 엿방 아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