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일터, 당신이 만듭니다] 2. 사망사고 잇따르는 부산항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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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4대 항 중 사망자 수 1위… ‘안전 투자’ 눈감은 탓

물동량 2000만TEU 이상의 ‘메가포트’. 세계적인 환적 거점항. 부산항이 이 같은 타이틀을 얻기 까지, 365일 24시간 부산항을 쉬지 않고 돌리는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있었다. 빛나는 타이틀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다. 부산항은 최근 전국 4대항 중 ‘사망자 수 1위’라는 오명도 떠안았다. 2018년부터 2년간 8차례의 사망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부산항의 사망 사고가 단순 ‘사고’가 아닌,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에는 투자하지 않는 ‘구조적 문제’에서부터 비롯한다고 지적한다.


최근 2년간 항만 노동자 8명 사망

낮은 조도·중장비 운행 속 맨몸 작업

시설 노후화 등 열악한 환경이 원인

기존 ‘안전관리 상설협의체’ 유명무실

문제점 즉시 개선토록 예산 투입해야


■잇따르는 사고…예견된 ‘인재’

지난해 12월 1일 오후 8시 50분께. 부산 남구 감만부두 4번 선석 앞에서 이동 중이던 크레인 기사 A(48) 씨가 야드 트랙터에 치여 숨졌다. 당시 A 씨는 근무를 마친 뒤, 야간 근무자와 교대하기 위해 3번 선석으로 걸어 이동하는 중이었다. 보통 부두를 이동할 때는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지만, 이날은 비가 내리고 날씨가 추웠던 탓에 혼자 이동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트랙터 운전자 B(32) 씨는 “당시 비가 오는 데다 날씨마저 어두워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사고가 발생한 후, 화살은 A 씨와 B 씨로 향했다. 왜 셔틀버스를 타지 않았으며, 왜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는지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조명’에 있었다. 산업안전보건법 상 근로자가 ‘상시 작업하는 장소’의 작업면 조도는 75럭스(lux) 이상이어야 하나, 사고 당시 조도는 7럭스에 불과했다. 현장 노동자들은 “사고가 일어나기 이전부터 조명이 어둡다는 이야기를 수차례 강조했지만, 이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결국 사고로 이어졌다”고 토로했다.

부두에서의 위험천만한 상황은 이뿐만 아니다. 2018년에는 두 명의 작업자가 라싱콘(컨테이너끼리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하는 도구)을 손수레로 옮기던 중 참변을 당했다. 대부분 전자동 시스템을 갖춘 신항은 지게차를 이용해 라싱콘을 옮기고 있지만, 북항에서는 여전히 이 장비들을 노동자들이 직접 옮기고 있다. 중장비들이 쉴 틈 없이 머리 위를 오가고, 수십 톤의 중장비가 수도 없이 돌아다니는 데다 조명마저 어둡지만 노동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맨 몸으로 부두에서 작업을 벌인다.

부산항에서는 2018년 이후부터 총 8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2018년에만 5건, 2019년에 3건이다. 경상, 중상 등의 사고는 더 빈번히 발생한다. 부산항 안전관리 상설협의체에 따르면, 지난해 1월~9월까지 부산항에서는 총 92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이중 중상은 23건에 달했다. 유형별로는 ‘넘어짐’에 의한 부상이 30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물체에 맞음’이 26건, ‘끼임’이 12건, ‘떨어짐’이 9건으로 뒤를 이었다.

부산항운노조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항인 북항의 경우 ‘시설 노후화’로 인한 사고가 잇따른다. 기계 오작동으로 인해 컨테이너가 떨어지거나, 신규 장비를 들이지 않은 탓에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두 운영사들이 적극적으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가장 명확한 해결책이다. 하지만, 북항 재개발 계획 등으로 인해 언제까지 부두를 운영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마냥 설비에 투자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또, 문제는 노동자가 안전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노동 환경이 열악할 경우 ‘작업 중지’등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하지만, 부두의 경우 단일 사업장이 아닌 데다 협의해야 할 주체가 많아 이마저도 어려운 상황. 현장 노동자들은 안전한 부산항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산해수청, 부산항만공사, 각 부두 운영사, 노조 등이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탁상공론’에 그치지 않으려면

2018년 11월 20일 부산 동구 자성대부두에서 또 한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2018년에 일어난 5번째 사망 사고였다. 이 사고를 계기로 ‘부산항 안전사고 방지 긴급 대책회의’가 열렸다. 부산항의 잇따른 사망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관계기관이 ‘상설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2018년 5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후 2019년에서야 ‘부산항 안전관리 상설협의체’가 구성됐다.

상설협의체에는 부산해수청,부산해수청, 부산항만공사, 운영사, 노조 등이 참석하며, 분기별로 안건을 모았다. 2019년 5월에는 북항, 신항, 감천항 각 1개 부두에 유관기관 합동 현장실태조사도 진행됐다.

하지만 상설협의체가 구성된 2019년에도 사망사고는 잇따르고 있다. 현장에서는 상설협의체를 구성이후 각 기관이 안전관리에 관심을 갖는 등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탁상공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상설협의체가 구성된 이후에도, 2019년 12월에는 2건의 사고가 보름 간격으로 발생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1일 북항 감만부두에서 어두운 조명 탓에 사고가 난 것이 드러났지만, 아직까지도 조명이 교체되지 않았다. 사고 이후 조명을 LED로 교체해야한다는 요구들이 나왔지만, 교체 비용을 누가 낼 것이냐를 두고 기관 간에 ‘눈치 싸움’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협의체에 참가한 한 관계자에 따르면, 부산항만공사 측은 '집주인'과 '세입자'라는 비유를 들어가며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부산항만공사가 비용을 들이고, 향후 운영사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향으로 매듭지어졌지만 서로 책임을 미루는 사이 6개월이 지났다. 아직도 감만부두의 조명은 개선되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공포를 무릅쓰고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부산항운노조 후생복지부 태홍식 부장은 “안전상설협의체가 만들어지면서 위험 요소에 대해서 발굴하고, 사고의 위험에 대해 인지하게 된 것은 정말 다행이지만 즉시 개선이 안 된다면 ‘탁상공론’에 불과하게 된다”면서 “협의체에서 책임소재를 명확히 해서 노동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예산을 투입해 즉시 개선될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이 기획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부산일보가 공동 기획하였습니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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