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명단서 빠진 故심미자 할머니, 정의연에 항의했지만…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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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 옛 통감관저터에 열린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제막식'에 참석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와 참석자들이 조형물 '대지의 눈' 앞에서 기념촬영을 갖고 있다. '기억의 터' 제공 서울 남산 옛 통감관저터에 열린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제막식'에 참석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와 참석자들이 조형물 '대지의 눈' 앞에서 기념촬영을 갖고 있다. '기억의 터' 제공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정의기억연대 전신)를 겨냥해 '악당'이라며 비판했던 위안부 피해자 故심미자 할머니(2008년 작고)가 남산 '기억의 터'에 있는 피해자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빠진 것에 대해 항의했으나 묵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서울 남산 기억의 터에 있는 조형물 '대지의 눈'에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247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여기서 심미자 할머니의 이름은 빠져있다. 심 할머니는 일본 최고재판소로부터 '일반군 위안부'라는 사실을 처음 인정받은 피해자다.

기억의 터는 정대협이 여성단체 등과 함께 국민성금을 모아 서울시와 함께 남산 옛 통감관저터에 만든 추모 공간으로, 2016년 8월 제막식을 열었다. 기억의 터 조성추진위원회와 서울시 관계자는 당시 피해자 247명의 명단을 정대협으로 받았다고 전했다.

심 할머니를 명단에서 제외한 이유에 대해 정의연 관계자는 "사연이 많다. 할머니의 속사정은 언급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그쳤다. 당시 정대협 대표였던 윤 당선인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와 관련, 20일 심 할머니 측 관계자는 '한경닷컴'과 인터뷰에서 "당시 내용증명까지 보내 심 할머니가 명단에서 빠진 것에 대해 항의했다"며 "당초 심 할머니와 함께 활동하던 정의연이 심 할머니가 자신들을 비판하자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심 할머니를 명단에 넣으라고 정의연 측에 내용증명까지 보냈다"면서 "당시 정의연은 답변서를 통해 '역사 연구가들이 심미자 할머니 증언에 대한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해서 남산 기림비 터에서 뺐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국가로부터 지원금도 받다 돌아가신 분인데, 정의연 마음대로 명단에서 빼서 심 할머니를 가짜 피해자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 연합뉴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 연합뉴스

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33명은 2004년 1월 '위안부 두 번 울린 정대협, 문 닫아라'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정대협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 회복과는 정반대의 길을 달려왔다" "당신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역사의 무대에 앵벌이로 팔아 배를 불려온 악당"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들이 정대협을 비판한 이유는 '국민기금'과 연관이 있다. 국민기금은 1995년 7월에 발족한 일본의 재단법인으로, 당시 일본사회당 소속의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총리 주도로 세워졌다. 일본의 대표적 진보지식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16명의 민간인들이 민간을 대상으로 '국민기금'을 모아 필리핀, 대만,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 284명에게 총 5억6500만엔(약 82억9250만원)을 지급했다. 1인당 약 200만엔(약 2900만원)을 지급한 셈이다.

그러나 당시 정대협은 국민기금이 일본 정부 차원의 '보상'이 아니라 '위로금'이라며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실제 상당수 위안부 피해자들도 국민기금에 반대했다.

정대협은 1996년 10월부터 국민기금을 대신한 범국민 모금운동을 진행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계지원을 시도했다. 그러나 1997년 1월 일본 정부는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 7명에게 의료지원금을 포함해 1인당 500만엔(약 7250만원)의 위로금을 전달했다. 이후 정대협은 1998년 5월부터 자체 모금액과 정부 예산을 합쳐 위안부 피해자 1인당 4300만원의 생활안정지원금을 지급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로부터 국민기금을 수령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았다. 심 할머니를 포함해 국민기금을 받은 피해자들은 모두 정부 지원에서 제외됐다.

이에 심 할머니를 포함한 피해자 33명은 '무궁화할머니회'라는 이름으로 모여 2004년 성명을 내고 "정대협은 형편이 어려운 7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아시아여성기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매도했다" "우리 33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진짜 위안부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안선미 정대협 팀장은 2011년 주간경향 인터뷰에서 "이 문제로 일부 할머니들은 정대협이 기금을 막았다며 불신을 가지게 됐다. 또한 일본 정부가 한일협정에도 불구하고 나름 노력을 했다는 변명거리가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심 할머니를 포함한 피해자 13명은 정대협과 나눔의 집을 상대로 '모금 행위 및 시위 동원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법원으로부터 기각당하기도 했다.

전날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심미자 할머니는 2006년 작성한 유언장에서 윤미향 당선인과 정대협을 겨냥해 "통장 수십 개를 만들어 전 세계에서 후원금을 받아 부귀영화를 누리고 떵떵거렸다" "위안부의 이름 팔아 긁어모은 후원금이 우리에겐 한 푼도 안 온다" "인권과 명예회복을 시켜준다면서 거짓과 위선으로 위장했다"고 맹비난하는 등 거센 반감을 드러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rpessjkk@busan.com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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