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신문은 누구를 위해 기사를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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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쉬운 질문일수록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우리가 날마다 뉴스를 접하며 살지만, ‘뉴스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쉽게 답하지 못하는 것처럼. 반면, 어렵다고 생각하는 질문일수록 답은 의외로 간단한 경우가 많다. “신문은 누구를 위해 기사를 쓰는가”에 대한 답은 곧 튀어나오는 만큼 상대적으로 어려운 질문일 수 있겠다. 정답은 싱겁게도 “시민(독자)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민(독자)은 누구인가”라고 재차 묻는다면 어떨까. 질문은 쉽지만, 역시 대답은 어렵다. 예전의 저널리즘 교과서에는 ‘신문의 독자란 19세 이상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남자’로 되어 있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학력 차별이고 성차별이자, 세대 차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는 20세기 중엽의 미국 소도시(인구 10만 명 내외)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미국의 소도시 거주자들은 지금도 거의 한평생을 그 지역에서만 산다. 그래서 웬만한 이웃 주민의 삶은 시시콜콜하게 아는 경우가 다반사다. 미국의 신문 부고가 한 사람의 일생을 세세하게 정리하는 기사로 다뤄지는 연원이기도 하다. 이런 사회에서 시민이란 사회·경제 활동을 하는 이웃의 성인 남자인 게 당연했다.

<부산일보> 최근 새 독자위원회 발족
20·30대 이슈, 지면에서 보기 어려워
미래 부산 고려하면 청년층 관심 중요
지금 독자 아니어도 계속 유입 노력을

그렇다면 부산처럼 인구가 수백만 명이 넘고, 사회·경제 활동을 하는 여성도 넘쳐나고, 학력도 고졸보다 대졸이 더 많은 현대의 대도시라면, ‘시민’은 어떻게 규정될까. 익명의 대도시에서 ‘시민은 낯선 타자’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국 종합일간지들은 이런 시민을 정치적으로라도 세분화해 독자(시민)를 나눠 가지는 전략을 취했다. 신문에서 정치 뉴스가 차지하는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더 컸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산일보>는 지난 4월 말 독자위원회를 출범하면서 최근 첫 모임을 했다. <부산일보>는 사고를 통해 “새롭게 출범하는 ‘부산일보 독자위원회’에는 25명의 독자위원이 참여합니다. 경제계와 언론학회, 시민단체, 법조계, 문화예술계, 의료계 등 각계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을 위촉했습니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와 여섯 아이의 아버지 등도 참여해 한층 다양한 독자들의 의견을 대변합니다. 부산일보사는 독자위원회를 통해 독자들의 목소리에 더 많이 귀 기울이겠습니다. 이를 통해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고, 지역발전을 선도하는 언론 본연의 사명을 흔들림 없이 수행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과연 내로라하는 각계의 전문가를 모았다 해서 지역의 ‘다양한’ 여론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까.

관문 공항(신공항)만 놓고 얘기해 보자. <부산일보>가 부산의 미래를 위해 여기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눈물겹도록 고맙다. 필자 또한 24시간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관문공항이 부산의 필수적인 사회간접자본 시설임을 마땅히 여긴다.

그런데 350만 부산시민 중 관문 공항 이슈에 <부산일보>만큼 관심을 가진 이가 얼마나 될까. 누구나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경제 수준이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20·30대는 항공기 선택에서 비용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이들은 심야가 되었든, 새벽이 되었든 가격이 싸면 그만이다. 24시간 관문 공항이 마련돼 편안한 시간대에 비싼 항공료를 요구한다면, 이들은 인천공항이나 일본 공항을 경유하더라도 항공편을 싸게 구할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의 관문 공항 이슈는 40대 이상의 여유 있는 시민들에게 해당하는 ‘한정된’ 이슈일 수 있다. 그런 관문 공항을 만들어본들 이용객이 없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은 도떼기시장처럼 북적이는 공항이지만, 미래 부산의 인구절벽을 고려한다면 향후에도 현재와 같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관문 공항 못지않게 미래의 공항 이용객, 곧 현재의 부산 청년들은 물론 타지의 청년들도 살고 싶은 도시가 되게끔 청년 이슈에 더욱 관심을 경주해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캡스톤디자인 수업에서 전공 학생들이 ‘부산의 지역 언론을 살리고 싶다’며 내게 자문하러 왔다. 지역 언론은 신방과 교수들도 손을 놓다시피 했는데, 한편으론 기특했다. “왜 지역 언론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미래의 독자인 20·30대를 너무 무시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고교 학생기자도 지면 기사를 내는데, 20·30대 이슈는 투명인간처럼 찾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신문이, 시민이 아닌 실제 구독자를 위해 기사를 쓴다면 논란의 여지가 줄어들 수 있겠다. 일반 시민이 신문을 비판하면 마음속으로라도 ‘우리 신문을 읽지 않는다면, 그런 말씀 마세요’라고 항변할 수 있겠다. 청년 이슈도 실제 청년 독자가 많다면 절대 무시하지 않으리라 말하고 싶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비판하는 시민도, 지금은 신문을 읽지 않는 청년도 어떻게든 구독자로 끌어들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렇기에 다시금 질문한다. “누구를 위해 기사를 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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