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연극 행복하게 하자” 의기투합 20년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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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소극장’ 구민주 대표와 ‘극단 아센’ 호민 대표. ‘하늘바람소극장’ 구민주 대표와 ‘극단 아센’ 호민 대표.

‘극단 아센’ 호민 대표와 ‘하늘바람소극장’ 구민주 대표.

두 사람은 부산 연극판에서 오랜 세월 산전수전, 공중전을 함께 겪은 ‘동지’다. 극단 아센의 창단 멤버인 두 사람은 8일부터 14일까지 극단 설립 20주년 기념 공연 ‘펠리칸’을 부산 남구 대연동 하늘바람소극장 무대에 올린다. 원래 공연 예정일은 4월 21일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개막이 2개월 가까이 늦춰졌다. 두 대표는 “막이 올라갈 때까지 긴장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호민 대표는 “공연 준비 중에 직격탄을 맞았다. 일정이 뒤로 더 밀리면 배우 섭외나 스케줄 조정에 문제가 생긴다. 조심스럽지만, 이달에 먼저 시작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구민주 대표는 “코로나로 연극계 전체가 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다. 하반기에 모든 공연이 몰리면서 부산 연극판이 교통정리가 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인다.


극단 아센 20주년 기념 공연

하늘바람소극장서 ‘펠리칸’

창단 멤버 구민주·호민 대표

1997년 2인극 뒤 동고동락

전업 연극인 지원 강화해야


극단 아센의 20주년 기념 공연 ‘펠리칸’ 연습 장면. 극단 아센 제공 극단 아센의 20주년 기념 공연 ‘펠리칸’ 연습 장면. 극단 아센 제공

호 대표와 구 대표는 경성대 연극영화과 동문이다. 졸업 후 합동 공연에서 ‘프리 배우’로 얼굴 보는 사이였던 두 사람은 1997년 2인극 ‘돌아서서 떠나라’ 출연을 계기로 의기투합했다. 구 대표는 “더하기 빼기 없이 콩 한 쪽도 투명하게 나눠 먹자, 좋아하는 연극을 행복하게 하자는 취지로 2000년 2월 24일 극단 아센을 창단했다”고 말했다.

호 대표는 “배우에 대한 대우가 형편없는 시대였지만, 끈끈한 인간애로 연극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그때와 비교해서 요즘은 ‘전업 연극인’으로 살기가 힘들어서 그런지 연극에 집중하지 못하는 장면이 자꾸 연출되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는 소회를 밝혔다. 구 대표도 “정부가 문화 예술 지원금을 푸는 방식이 수혜 대상은 넓어지지만, 깊이는 점점 약해지는 분위기다. 전업 예술가 입장에서 변별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며 전업 예술가 보호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둘은 극단 창단 이후 고관 입구에서 7년, 미리내소극장을 인수해서 사직동에서 7년, 지금의 하늘바람소극장으로 이전해서 7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두 사람은 겁 없이 ‘자체 제작’을 하겠다고 스폰서를 구하러 돌아다니고 불법 임대에 속아 피 같은 보증금 300만 원을 날린 적도 있다. 주차장 관리실 좁은 공간에서 7장짜리 시놉시스를 들고 차기작을 구상하기도 했다.

구 대표는 사직동 시절 옆에 있는 야구장에 3만 관중이 들 때 극장에는 관객이 한 명도 없어 무대를 못 올린 날을 회상했다. “모노드라마 ‘영순아 어디 가니’ 두 달 장기 공연을 할 때였다. ‘야구장 때문’이라며 펑펑 울었다.(웃음)” 옆에서 호 대표가 “첫 의상이 검은 상복 같은 옷인데, 그걸 입고 바닥에 앉아 눈물을 줄줄 흘리더라”며 가세한다. 다행히 ‘영순아 어디 가니’는 뒤에 300회 이상 무대를 올리는 인기작이 됐다.

이번에 준비한 ‘펠리칸’은 현대 고전 명품 작가인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작품이다. 작품 제목의 새는 ‘모성애’가 가장 뜨거운 조류로 알려져 있다. 사위와 불륜에 빠진 엄마, 사실을 알면서도 침묵하는 딸,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나약한 아들 등이 등장하는 이 작품에서 구 대표는 ‘나쁜 엄마’ 역을 맡았다. 연출가로 나선 호 대표는 “피해를 유발했지만 너무 당당한 엄마도, 희생당했다고 생각만 할 뿐 주체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자녀도 다 문제가 있다. 자기 정체성을 잃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이야기로 진중하게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작품을 설명한다.

20년 넘는 시간을 부산 연극에 ‘올인’해 온 두 대표에게 지역 연극의 시작점인 소극장이 마주한 현실은 안타까움 그 자체다. 호 대표와 구 대표는 “시가 지역 연극을 지원하는데 있어 정책 방향에 흔들림이 없었으면 한다. 연극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지속성 있는 정책을 펼쳐야 후배들에게라도 도움이 될 것 아니겠느냐”고 입을 모았다. ▶극단 아센 20주년 기념 공연 ‘펠리칸’=14일까지 하늘바람소극장. 051-504-2544.글·사진=오금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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