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피어오른 DMZ 아름다워서 더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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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 내 철원 풍천원 들판을 찍은 박종우의 ‘DMZ #1’. 이 일대는 궁예도성이 있던 자리다.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우리가 잘 모르는 우리 땅, 비무장지대를 카메라에 담았다.

부산 해운대구 우동 고은사진미술관은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기념해 다큐멘터리 사진가 박종우의 ‘비무장지대 DMZ’전을 오는 8월 26일까지 개최한다. 1953년 정전협정에 따라 1292개의 말뚝을 이은 가상의 선이 한반도를 가로질렀다. 이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쪽과 북쪽으로 각각 2km씩이 비무장지대로 설정됐다.

고은사진미술관 한국전쟁 70주년 기획
박종우 사진가 ‘비무장지대 DMZ’전
2009년부터 렌즈에 담은 비현실적 현실
GP는 오래된 성채 같은 이국적 풍경
남북 관계 탓 GP 기록 못 끝내 아쉬워

감시 초소를 찍은 ‘DMZ GP #5’(위)와 야경을 담은 ‘DMZ SLL #4’.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박종우 사진가가 비무장지대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다. 국방부의 비무장지대 영상물 제작 작업에 참여한 박 작가는 자투리 시간에 개인적으로 사진 작업을 했다. “비무장지대를 찍고 싶었지만, 접근이 어려우니 포기하고 있었는데 기회가 왔다. 촬영 시간이 짧아 다큐적으로 해석할 시간이 없어서 아카이브로 접근하자고 생각했다.”

‘금지된 땅’에 처음 들어갈 때 박 작가는 군사시설, 무기, 군인이 많은 장면을 마주할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군사시설 건물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군인들은 밤에 활동한다고 하더라. 내가 줄곧 살아온 한반도의 일부인데 한동안은 비현실의 세계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박 사진가는 비무장지대에 관해 공부했다. “우리 땅인데 우리가 모르는 세상이었다. 비무장지대 지도도 미국 문서보관소에서 구했다. 정전협정 때 첨부한 지도인데 직접 손으로 그린 이 지도가 제일 정확하다.” 비무장지대의 특성상 사진을 찍을 때마다 서류를 제출해야 했다. “촬영할 때마다 합참, 유엔사, 국방부, 육군본부 등 명령서가 기본 5~6장은 따라왔다. 날씨가 좋지 않아 촬영이 취소되면 명령서 도장을 처음부터 새로 다 받아야 했다.”

남북 관계라는 정치적 변수도 사진가의 카메라를 막았다. “GP(감시 초소) 사진을 남긴 적이 없던 국방부가 생각이 바뀌어 사진을 찍게 했다. 유인·무인 GP, 버려진 GP 등을 직접 들어가거나 가까이서 촬영했다. 10여 곳을 찍은 상태에서 천안함 피격 사건이 터졌다. 그 이후로는 아예 GP에 못 들어갔다.” 전시장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GP 사진은 비무장지대라는 사실을 모르고 보면 네팔이나 이탈리아의 오래된 성채처럼 보인다. 박 작가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을 GP 기록 작업이 미완으로 끝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아카이브로 접근한 작업이라고 하지만, 전시장 곳곳에서 마음을 치고 들어오는 사진과 마주하게 된다. 강원도 철원 풍천원 들판 습지에 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대표적이다. “10월 마지막 주와 11월 첫 주, 1년 중 딱 2주 동안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옛날 논이 있던 자리로 일본이 관계 수로를 만들어서 습한 기운이 있는 지역이다. 기온 차가 날 때 안개가 올라와 아름답지만, 슬픈 경관이 펼쳐진다.” 작가의 이야기에 좀 더 보태면 단순한 슬픔이 아닌, 안개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올라온다.

2002년 판문점을 방문한 귄터 그라스는 목가적인 장소에서 군사적 대립이 공존하는 장면을 두고 “한 편의 부조리극이 공연되는 극장에 와 있는 듯하다”고 표현했다. 3중의 철조망이 초록 능선에 상처를 낸 모습, 1년 365일 철책선을 밝히는 조명이 연출하는 야경 등 사진으로 확인되는 부조리의 현장은 바다까지 이어진다. 고은사진미술관과 마주한 부산프랑스문화원 아트스페이스에는 한강 하구 중립수역과 북방한계선(NLL) 관련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연평도 해변에 설치된 용치(날카롭게 절단된 쇠 레일 등을 꽂아 배의 침투를 막는 구조물) 사진은 박 작가의 다음 작업을 미리 보여 주는 것이다. “용치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캐다 보니 대만, 독일, 영국, 이탈리아 등 각 나라에 용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지 않는 적을 기다리며’라는 제목으로 해외의 용치를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10년 동안 기록한 비무장지대 사진을 통해 사진가 박종우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단순하게 말하면 전쟁하지 말자는 것이다. 전쟁이 사람 사는 것에 과연 필요한가? 어느 한쪽이든 전쟁을 하면 결국은 자멸이다.” ▶‘비무장지대 DMZ’=8월 26일까지 고은사진미술관. 051-746-0055. 사전 예약 관람제.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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