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장 일 잘해야 여성 정치인에 대한 보수적 시선 바뀔 것”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산 여성 구청장 3인에게 듣는다

민선 7기 이전까지, 부산지역의 ‘구청장’ 자리는 보수정당과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물론 여성 구청장 2명이 있었지만, 이들도 힘 있는 보수정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랬던 부산 정치 지형이 2018년 6월 13일 지방선거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부산시장을 비롯해 16개 구·군 중 3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더불어민주당이 휩쓸었다. 이변은 또 있었다. 부산에서 처음으로 민주당 출신 여성 구청장이, 그것도 3명이나 동시에 당선됐다. 민선 7기를 절반쯤 보낸 8일,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던 민주당 여성 구청장 3인을 만났다.


가덕도신공항 유치되면 일자리 파급 엄청나

일치단결 목소리로 우리 셋이 삭발이라도…


대통령에 편지, 시행령 개정안에 북구 포함 보람

주민·직원·전문가와 소통, 따뜻한 북구 만들 것


전국 기초단체장 226명 중 여성 8명 불과

사람 중심 안전도시 등 5개 목표 완수 다짐


■‘여성’보다 ‘능력’에 초점

“여성 구청장이라서가 아니라, 일 잘하는 구청장 3명이 모인 거죠?”

좌담회 시작 전, 서은숙 부산진구청장이 허스키한 목소리로 물었다. 구청장의 ‘성별’이 아닌, 구청장으로서의 ‘능력’을 봐 달라는 표현이었다. 민주당 출신의 첫 여성 구청장이라는 ‘특별함’이 당선된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이들을 돋보이게 하지만, 이들은 그 특별함이 단지 성별 때문이지 않길 바랐다.

정명희 북구청장은 “선거 과정에서도 많은 분들이 여성 구청장 후보로 힘든 점, 어려운 점이 없는지 물어봤는데, 성별보다 능력에 초점을 맞춰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여성이라서 권위적이지 않은 리더십, 소통과 공감의 리더십을 보여 줄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고 전했다.

한발 더 나아가, 여성이 기초단체장으로 당선되는 것이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닌 세상이 되길 바랐다. 부산에서 3명의 여성 구청장이 나왔지만,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중 여성 기초단체장은 8명이 전부다. 지금까지도 여성 광역자치단체장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정미영 금정구청장은 “남녀가 평등한 세상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여성 기초단체장은 8명에 불과하다. 정말 평등하려면 113명 정도는 나왔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짚었다.

서은숙 부산진구청장도 여전히 여성이 정치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에 공감했다. 서은숙 구청장은 “여성이 단체장이라는 고위직 공천을 받는 과정이 쉽지 않다. 아직도 사회가 여성들에게 불리한 점이 많다. 그런 점들을 바꿔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민주당 출신 첫 여성 구청장이라는 타이틀의 책임감도 상당하다. 정미영 구청장은 “구청장으로서 역할을 잘 해내고, 이런 성과들이 신뢰를 얻을 때 여성 정치인에 대한 보수적인 시선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길 곳곳에 난관들도 도사린다. 한 여성 단체 회칙에 ‘구청장 부인을 회장으로 한다’는 문구에서 보듯, 여전히 구청장은 남성이라는 인식들도 남아 있다. 서은숙 구청장은 “‘남자 못지않게 일 잘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기대한 만큼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덧붙였다.


■굵직한 정책에 세심함은 플러스

세 구청장은 구·시의원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예산을 심의하는 업무를 했던 터라 ‘알뜰살뜰함’이 몸에 배어 있다. 구청장이 되고 보니, 의원일 때는 몰랐던 입장 차이도 많이 느낀다. 정명희 구청장은 구청장의 업무를 2차 방정식이 아닌, ‘다차원 방정식’을 푸는 것이라 설명했다. 정명희 구청장은 “시의원일 때는 ‘선한 의지’만 있으면 됐다. 하지만 구청장이 되고 보니, 선한 의지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 선한 결과물까지 만들어내야 하는 거더라. 결과물을 만드는 게 정말 어렵지만, 결과가 눈에 보이니 더 힘을 내게 된다”고 말했다.

정미영 구청장은 “12년 동안 구의원으로 있으면서 구정의 흐름을 속속들이 알게 됐다. 의원일 때는 견제의 역할만 했는데, 구청장이 되고 보니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 해 주는 직원들에게 특히 고마움을 많이 느낀다”고 전했다.

의원으로서 주민의 이야기를 많이 들은 덕분에, 주민이 필요로 하는 것도 더 빨리 파악하게 됐다. 역대 구청장들과 다른 점도 이런 ‘세심함’에서 나온다. 금정구는 인구의 60% 이상이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특징을 살려, 아파트 관리비 절감을 위한 조직을 별도로 만들었다. 부산진구는 10리터 종량제 쓰레기봉투 가격을 30% 내렸다.

굵직한 정책적 변화도 이끌어 내고 있다. 정명희 북구청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서 시행령 개정안에 북구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모두가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구포 개시장’ 폐쇄도 이끌어냈다. 부산진구는 시민이 묻고 서은숙 구청장이 답한다는 ‘시문서답’을 운영하며 주민들의 목소리에 끊임없이 귀 기울이고 있다.


■반환점에 주민 위한 봉사 다짐

이제 곧 임기의 반환점을 도는 이들은 후회가 남지 않도록 주민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정미영 구청장은 “감염병 확산 방지는 물론, 어려운 지역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내실을 다져야 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다. 사람 중심의 안전도시, 구민에게 감동하는 교육문화, 개방과 공감의 소통행정 등 5개 목표를 완수하겠다”고 전했다. 서은숙 구청장은 “반환점은 새로운 출발점이기도 하다. 첫 여성 구청장으로 취임했던 날, 나를 보던 시민들의 눈빛과 표정을 기억하며 그동안 그려 온 부산진구의 밑그림을 완성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명희 구청장은 “남은 2년도 24시간을 48시간처럼 부지런히 살아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해 왔듯이 주민들, 직원들, 전문가와 소통하면서 누구나 살고 싶은 북구, 사람 중심의 따뜻한 북구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최대 현안은 ‘동남권 신공항’ 뽑아

구정뿐 아니라, 부·울·경 지역의 가장 큰 현안인 ‘동남권 신공항’에 대해서도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서은숙 구청장은 “동남아 관광객이 전부 새벽에 도착하게 돼 있는데, 이 자체가 동남아 관광 시장을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정명희 구청장은 “해외 출장을 가려면 부·울·경 지역 주민은 하루 전날 올라가서 돈과 시간을 써야 한다”며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들은 지역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가덕도 신공항을 꼭 유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미영 구청장은 “부산 청년들이 부산에서 살고 싶지만, 일자리가 없어 부산을 떠나는 실정이다. 정치 논리를 떠나, 대한민국 국익과 상식적 판단에서 유치해야 할 문제”라고 짚었다. 서 구청장은 “서울 사람들이 부산에 오면, 부산은 ‘일자리만 있으면 참 살기 좋다’고 말한다. 가덕도 신공항만 유치돼도 그 파급효과까지 따지면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생겨나겠느냐”면서 “당을 떠나서 부산에서 아이 키우고 사는 시민이라면 일치 단결된 목소리로 외쳐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서 구청장은 이어 “여성 구청장들이 삭발 한번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사진=강원태 기자 wkang@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