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북항에서 가덕도신공항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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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왕조시대에는 임금이 사는 궁궐이 있는 서울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갔다. 상하좌우 기준도 서울이었다. 부산에서 서울 가는 것은 올라가는 것이요, 서울에서 부산 가는 것은 내려가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봤을 때 낙동강 왼쪽은 경상좌도요, 오른쪽은 경상우도였다. 자신이 발 딛고 살아가는 로컬(local)이 세상의 중심이 된 오늘의 이 대명천지에서는 사정이 확 달라졌다. 예컨대 부산에서 낙동강을 봤을 때 김해는 좌도(左都)요, 양산은 우도(右都)다.

낙동강 물길은 물론이고 도시전철로도 이어진 좌도 김해와 우도 양산은 부산과는 공동생활권이다. 지리적으로 낙동강 벨트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노무현-문재인 벨트’라 이름할 수 있다. 김해에는 노 전 대통령의 봉하 사저가 있고, 양산에는 문 대통령의 매곡동 사저가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2022년 5월 퇴임 이후 거주할 사저를 경호를 이유로 매곡동에서 평산마을로 옮기겠다는 발표가 최근 나오면서 자동차로 50여 분 거리인 ‘문재인- 노무현 벨트’가 세간의 화제다.

부산·김해·양산, ‘노-문 벨트’ 해당
대통령들 낙향으로 이미지 굳어

부산의 대역사 북항 재개발 사업
‘노’가 시작하고 ‘문’이 마무리해 눈길

돌고 돌아 이젠 가덕도신공항 차례
민의 받들어 문 대통령이 결단해야


노-문 혹은 문-노 벨트는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 서울이 아닌 고향의 사저에서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로컬의 당당함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부산으로서는 이들 사저가 좌도 김해, 우도 양산에 각각 자리해 더 각별하다. 먹고살기 위해 서울로, 수도권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이 팍팍한 지방소멸의 시대에 대통령들의 낙향은 부산·경남(PK)의 위상을 한껏 올려놓았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두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PK에는 운명처럼 얽힌 두 사람의 인연이 상존한다.

부산일보 사옥에서, 부산역에서, 구봉산 봉수대에서, 수정산에서 부산의 대역사가 진행 중인 북항을 내려다볼 때마다 두 대통령을 떠올리게 된다. “북항 재개발은 부산 시민들이 오래전부터 원하던 사업이다. 국가적으로도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시키고 싶다.” 2006년 12월 노 대통령은 부산에서 북항 재개발 사업을 공식화했다. 2018년 3월 부산에서 문 대통령이 화답했다. “북항 재개발 사업은 전 노무현 대통령 때 기획하여 시작되었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시작한 일, 문재인 정부가 끝내겠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이 있다. 북항 재개발 사업을 공식화한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신공항 건설사업을 적극 검토하라”는 지시도 함께 내리게 된다. 이듬해 국토부는 ‘제2 관문공항(남부권 신공항) 타당성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김해공항 확장안 타당성 부족, 신공항 필요성 있음”. 국토부는 후속 용역에서 “동남권 지역 항공수요 증가에 따라 기존 공항이 용량의 한계에 도달할 것으로 보여 적기에 신공항 개발을 수행, 경쟁력 있는 공항을 개발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제 다시 공은 문 대통령에게 돌아갔다. 되돌아보면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부터 줄곧 가덕도신공항에 힘을 실어준 게 사실이다. 대선 후보로 나선 2012년 “동남권 신공항이 생겨서 부산이 육해공을 아우르는 세계적인 중심지가 돼야 한다”고 했고, 2016년 총선을 앞두고는 “부산에서 민주당 후보 5명만 뽑아주면 2년 내에 가덕도신공항을 착공시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2017년 대선에서는 “5개 지자체의 공동 관문으로 활용되고, 인천공항에 맞먹는 허브 공항으로 클 수 있는 위상을 가지고 만들어져야 한다”라고도 했다.

돌고 돌아 지금 다시 가덕도신공항이다. 김해공항과 김포공항 수요 폭증으로 건설교통부가 대안 찾기에 나서면서 부산권 신공항 논의가 시작된 게 1990년이니 벌써 30년 세월이다. 김포공항 대안 찾기는 인천공항으로 날개를 날아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김해공항 대안 찾기는 정치인의 공약에 속고, 인천공항에 ‘몰빵’ 하는 중앙 관료에 밀려 지리멸렬 상태다. 신공항만 떠올리면 정말 징글징글한 30년이 아닐 수 없다.

가덕도신공항의 운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국무총리실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의 내부 첫 보고가 이달 중순에 있고, 최종 결론은 6월 안에 나온다고 한다. 지역 여론은 예민할 대로 예민해져 일촉즉발의 분위기다. 상황도 크게 달라졌다. 여와 야를 떠나 가덕도신공항 쪽으로 여론이 결집했다. 대구·경북(TK) 통합신공항 건설이 가시화한 만큼 장벽도 사라졌다. 2030 부산 월드 엑스포를 앞둔 처지라 인천공항이 아닌 부산권 허브 공항이 절실한 마당이다.

문 대통령은 6·10민주항쟁 33주년을 맞아 “평등한 경제는 우리가 반드시 성취해야 할 실질적 민주주의”라고 강조했다. ‘평등한 경제’라면 국가균형발전만 한 게 없다. 가덕도신공항은 균형발전의 상징이자 대명사다. 또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한국판 뉴딜은 가덕도신공항을 말할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북항에서 가덕도신공항까지 노무현 정부가 시작한 일, 문재인 정부가 끝내는 모습을 보고 싶다. 문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다.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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