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마늘이 기가 막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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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연예인은 아니지만 방송에서 자주 뵙는 분들이 있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인데, 그 가운데 나는 외식사업 전문가인 백종원 씨를 볼 때마다 참으로 감탄스럽고 또 존경스러운 생각이 든다. 감탄스러운 이유는 그분이 자기 분야에 대해 정말 전문가로서 해박한 지식과 식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존경스러운 이유는 그분이 자신의 능력을 어려운 골목식당이나 농민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기부하기 때문이다. 백종원 씨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여럿 있지만, 그 가운데 고속도로 휴게소를 다니면서 그 지역의 특산물을 이용한 메뉴를 개발하고 소개함으로써 소비를 장려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시청자들에게 레시피를 공개해 특산품들이 더 많이 소비되게 하자는 의도가 좋고 그 방법도 참 참신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프로그램이 조금씩 의심스러워진다. 어느 지역의 농민들이 못난이 감자가 너무 많이 남는다는 고충을 이야기하자 백종원 씨는 우리가 다 아는 백화점 재벌의 부회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그 백화점 매장에서 감자를 팔게 했다. 그 다음에는 고구마가 남아돈다고 하자 역시 같은 분에게 전화를 걸어 팔았다. 다시마가 남아돈다고 하니 이번에는 식품회사 회장님께 전화를 걸어 해결했다. 다음번에는 어떤 분이 또 등장할는지 궁금하다. 물론 백종원 씨나 선뜻 농수산물을 구입해 준 기업들의 뜻은 참 고맙다. 하지만 방송의 효과를 입어 일시적으로 못난이 감자나 고구마의 수요를 늘일 수는 있다 해도, 이런 방법으로 우리 농민들의 어려움을 어디까지 해결할 수 있을까? 농산물이 안 팔리고 가격이 떨어지는 이유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때문인데, 우리나라 재벌들이 모두 나서면 남는 농산물을 모두 처리할 수 있을까? 물론 백종원 씨에게 우리 농업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야 할 의무나 책임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정부나 지자체는 경우가 다르다. 당연히 그래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판매난 겪던 우리 농산물
백종원 제안에 대기업이 판로 지원
지역 특산 고구마 등 불티나게 팔려

지자체도 농산물 직접 유통 나서자
재정 부담 늘고 형평성 문제 불거져
근본 해결책 모색이 정부 역할 돼야



우리 농민들이 어렵지 않았던 적이 언제 있었느냐마는, 요즘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학교 급식이 중단되면서 많은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강원도와 몇몇 지자체가 지역 농민들을 위해 농산물 꾸러미를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직접 공급하는 일에 나서고 있다. 그 뜻도 좋고 방법도 나름 애쓴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지자체가 공급할 수 있는 농산물의 수량이나 종류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생산비나 유통비를 근본적으로 절감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자체가 포장비와 택배비를 대신 내주는 방식으로는 지자체의 재정 부담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모든 농민과 농산물에 똑같이 혜택이 돌아갈 수 없다면, 혜택을 받는 농민과 그렇지 못한 농민들 사이에 갈등을 만들 수도 있다. 실제로 지자체가 공급하는 가격으로 공급하지 못하는 농민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고 한다. 농민들이 어려움을 도우려 지자체가 나서는 일이 굳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예전에 우유 파동이 나자 우유 더 마시기 운동을 하자던 어느 정책 책임자의 주장과 크게 다를 것 없다. 어쩌다 한 번씩 여는 이벤트일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농민과 소비자 모두를 위해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마늘 값 양파 값이 오르락내리락 할 때마다 괜한 호들갑만 떨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른 척 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농산물의 수요를 잘 예측해서 공급을 조정하고, 복잡한 유통과정을 효율적으로 개선함으로써 농민과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는 일이다. 정부가 할 일이 따로 있고 시장이 할 일이 따로 있는데, 굳이 정부가 시장이 더 잘할 수 있는 일까지 나설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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