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화가가 묘사한 100년 전의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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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 / 엘리자베스 키스·엘스펫 키스 로버트슨 스콧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는 일본에서 잡지사를 운영하던 언니 엘스펫을 따라 1919년 3월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부산에 도착한 키스는 경부선 기차 창밖으로 펼쳐진 한국의 산하, 커다란 황소에 땔감을 잔뜩 싣고 걸어가는 농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가집과 기와집을 보며 강렬한 창작욕을 느꼈다. 동시에 총칼을 차고 승객을 검문하는 일본 경찰의 모습에서 한국이 일본에 점령당한 현실을 느꼈다. 그는 한국 소재 그림을 많이 남겼다. 1921년 서양인 화가로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1934년에도 열었다. 그는 “일본의 압제 속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한국인의 강인한 성품을 알게 되었고 존경하게 됐다”고 했다.

초가집·일본 경찰 등 그림 85점 주축
‘이순신 장군 초상화’ 추정 그림도 눈길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는 한국을 사랑한 두 영국인 자매의 시선으로 100년 전 옛 한국을 포착한 책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일상과 풍속을 진솔하게 그린 엘리자베스 키스의 한국 소재 그림 85점이 책의 주축을 이룬다. 책은 엘리자베스 키스와 언니 엘스펫 키스가 1946년 출간한 <올드 코리아·Old Korea>의 완전 복원판이다. 판화 35점, 수채화 46점, 드로잉 4점 등 키스가 한국을 소재로 그린 작품을 모두 실었다. 완전 복원판에 실린 키스의 그림은 한국인의 일상생활, 아름다운 한국 여성들, 한국의 풍속, 인상적인 한국의 풍경, 선비와 양반, 다양한 한국 사람들, 한국의 아이들, 이순신 장군 초상화(추정) 등으로 분류돼 있다. 완전 복원판은 키스의 작품 수집가이자 연구자인 재미교포 송영달 씨가 30여 년간 발굴한 키스의 한국 소재 그림 일체와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송 씨는 2006년 <올드 코리아> 한국어 초판인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을 펴냈다. 한국어 초판에는 키스의 작품이 66점 실렸다. 초판 출간 직후 국립현대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등에서 ‘푸른 눈에 비친 옛 한국’이란 제목의 키스 단독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송 씨는 2012년 키스의 또 다른 책 <동양의 창·Eastern Windows>을 우리말로 옮겨 <키스, 동양의 창을 열다>란 제목으로 펴냈다.

이번 완전 복원판의 6쪽과 299쪽에는 ‘이순신 장군 초상화’로 추정되는 키스의 그림이 처음으로 실려 눈길을 끈다. 이 그림은 이순신 장군의 원래 모습에 가장 가깝고, 작품 연도를 추정한 결과로는 현존하는 여러 초상화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우리가 알던 온화한 문인의 이미지와는 달리 강인하고 다부진 풍채가 압도적이다. 초상화 인물의 뒤에는 거북선이 그려져 있어 이순신 장군으로 추정된다.

송 씨는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살아가다 고서점에서 키스의 작품을 발견한 뒤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책에는 한국 문화와 한국인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를 바탕으로 아름다운 작품을 남긴 키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오롯이 담겼다. 엘리자베스 키스·엘스펫 키스 로버트슨 스콧 지음/송영달 옮김/책과함께/376쪽/3만 8000원. 김상훈 기자 ne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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