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구름 / 김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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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내가 꽃향기 맡으며 계단을 내려갈 때 뒷산을 넘어가던, 구름, 내가 달리는 기차 타고 검은 터널 빠져나올 때 포도밭 위에 떠 있던, 구름, 내가 수초 사이 작은 물고기 구경할 때 저수지 잔물결 위에서 출렁이던, 구름, 내가 참외밭을 지날 때 강 건너 산자락에 걸려있던, 구름, 미끄럼틀 타던 아이가 엄마 손 잡고 집으로 돌아갈 때 아파트 피뢰침 꼭대기에 걸려있던, 구름, 내가 구멍 뻥뻥 뚫린 커다란 달을 보며 음악을 들을 때 밤하늘을 횡단하던, 구름

-김참 시집 중에서-


경계가 없는 하늘처럼 구름에서 시작하여 구름으로 끝나는 이 시는 문장이 끝나지 않는다.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는 듯 쉼표가 구름처럼 떠 있다. 지금 내 눈 속에 들어오는 구름이 있다면 이미 일 분 전의 구름이 아니다. 무상하게 변화하고 흘러가는 구름은 일 분이라도 자세히 보아야 그 변화를 눈치챌 수 있다. 마치 오래된 너와 나의 관계 같기만 하다. 무심한 한 사람과 늘 그 곁을 지키는 한 사람. 내가 구름일까, 네가 구름일까. 문득 한 사람을 오래 들여다보고 싶은 맑은 아침이다.

김종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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