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꾼 전염병·의사·의료사고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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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의학사 / 이재담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는 파리의 하수도가 무대로 등장한다. 위고는 19세기 초 파리 지하에 ‘또 하나의 파리가 있다’고 묘사했다. 정부군의 총공격으로 수양딸 코제트의 애인인 공화파 투쟁가 마리우스가 중상을 입자, 혁명 세력의 거점이던 바리케이드 안으로 잠입한 장발장이 그를 둘러업고 불결하기 짝이 없는 하수도를 통해 탈출하는 장면에서다.

이 배경에는 1832년 파리의 콜레라 유행이 있다. 인구 100만이었던 이 도시에 그해 3월 하순부터 빈민가를 중심으로 콜레라 환자가 대량으로 발생했는데, 1개월도 지나지 않아 사망자가 1만 명이 넘었다.


페스트·스페인 독감 등 71편 에피소드

기관총 발명 미국 의사 얘기 흥미진진


그런데 위고는 장발장을 왜 하필 하수도로 탈출시켰을까? 하수도는 당시 아무도 그 정체를 몰랐던 콜레라균에 오염된 환자의 대변과 각종 오물이 모여드는 콜레라 유행의 온상이었다. 장발장이 가슴까지 물이 차는 지하 하수도를 통과하는 일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위고는 상상을 초월하는 위험을 무릅쓰는 장발장을 통해 그의 영웅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강조했다.

〈무서운 의학사〉는 ‘글 쓰는 의사’인 저자가 역사를 바꾼 치명적인 전염병과 생명을 바치며 여기에 응전했던 의사, 의학사에서 등골 서늘해지는 사건 사고를 담은 책이다. 저자가 펴낸 〈위대한 의학사〉, 〈이상한 의학사〉와 함께 에피소드 의학사 3부작 중 첫 번째 책이다.

〈무서운 의학사〉에는 3년 동안 2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중세 유럽의 페스트, 제1차 세계 대전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낳은 1918년의 스페인 독감, 얼음송곳으로 뇌를 후벼 파 사람을 반송장 상태로 만든 의사 등 71편의 에피소드를 묶었다. 에피소드는 ‘무서운 병’ ‘무서운 사람들’ ‘무서운 의사’ ‘무서운 의료’로 분류돼 있다.

수술받고 죽으나 병으로 죽으나 별반 차이가 없었던 18세기 유럽의 병원 풍경도 섬뜩하게 다가온다. 마취법과 항생 물질이 없던 당시 병원에서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온 환자는 자살하기도 했다. 생살을 째고 뼈를 끊어 내는 고통을 겪는 일이 두렵기도 했지만, 어쩌다 수술이 성공하더라도 상처가 곪아 패혈증으로 죽는 경우가 흔했기 때문이다.

최초로 기관총을 발명한 미국 의사인 리처드 개틀링 이야기도 흥미롭다. 그는 1861년 기관총 특허를 얻었다. 그가 기관총을 개발하게 된 이유는 군인 상당수가 총 때문이 아니라 병으로 죽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많은 병사가 집단으로 모여 있어서 불필요한 사망자가 늘어난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그는 혼자서 100명분의 전투력을 발휘하는 기계를 발명한다면 군대 인원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책은 다양한 에피소드로 의학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이재담 지음/사이언스북스/324쪽/2만 2000원. 김상훈 기자 neato@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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