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수소사회' 진입, 부산은 남의 길만 따라갈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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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열 해양수산부 차장

“수소산업은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엔진이다. 탄소경제에서 수소경제로 중심이동할 것이다.” 지난 1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1회 수소모빌리티+쇼’에서 정세균 국무총리가 한 말이다. 바야흐로 수소사회가 열리고 있다.

정부는 4대 권역별(영남권, 수도권, 중부권, 호남·강원권) 경제·산업 특성에 맞춰 중장기 수소생태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영남권은 모빌리티(이동수단) 분야를 주도하는 권역으로 발돋움한다. 울산은 기존 자동차산업을 토대로 수소자동차산업을 일으키고, 부산은 집적된 조선기자재산업 관련 인프라를 살려 수소선박산업을 활성화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구분은 어디까지나 큰 정책 방향일 뿐이다. 실상은 각 지자체가 수소사회에 걸맞은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분야 구분 없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울산 역시 수소자동차뿐 아니라 수소선박산업도 부산에 양보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내년까지 수소선박 실증선(시범선)을 건조하고, 2022년에는 태화강에 수소유람선을 띄울 계획이다.

이에 비해 수소선박 거점도시를 표방하는 부산시는 너무 느긋해 보인다. 부산의 앞선 기술을 살려 수소선박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기술을 타 지역이 우선 이용할 형편임에도 무사태평이다.

올해 초부터 부산대 수소선박기술센터는 산업통상자원부 지원을 통해 수소선박 실증선 건조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센터가 국비를 들여 선박용 수소연료전지를 설계하고, 이후 지자체가 센터의 수소연료전지를 이용한 시범선을 건조한다는 내용이다. 이 사업에 경남도와 전남도는 일찌감치 참여를 결정하고, 6월부터 본격적인 사업 진행절차에 돌입했다.

반면 부산시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사업 참여를 거부하다, 본보 지적 후 지난달 말에서야 참여를 결정했다. 참여를 결정했지만, 부산시의 소극적인 태도는 여전하다. 실증선의 선종(船種)이나 건조 시기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결정은 내년 이후로 미루고 있다. 부산시가 이처럼 수소선박 실증선 건조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두 가지다. 수소선박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데다, 수소선박 관련법규가 없다는 것이다. 궁색하다.

안전성이 검증된 기술만 이용하려 한다면, 이미 상용화된 기술을 비싼 돈 주고 사들여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기술개발은 평생 요원해진다. 관련 법규 부재를 핑계삼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법규가 만들어지기 전에 기술개발을 서둘러야, 법규가 생겼을 때 기술 상용화가 가능하다. 법규가 만들어진 후 다들 기다렸다는 듯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을 상용화할 때 그때서야 기술개발에 나서봐야 이미 늦다. 더구나 해양수산부가 이미 관련법규 제정을 추진 중이지 않은가.

외국의 한 시인은 자신의 시집 ‘도정(道程)’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앞에는 길이 없다. 내(가 걸어간) 뒤로 길이 생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이미 포장된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걷지 않은 험한 노지(露地)를 가장 먼저 걸어 길을 만드는 일일 테다. 부디 부산시가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수소사회에 진입할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앞서 수소사회 진입로를 만들기 바란다. bell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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